48년전 오늘 대한민국정부는  

 

정부차원에서 수백명의 민간인들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미치광이들의 정부를 타도한지 48년째 되는 날인데

 

너무 예전이야기인지 언론에서도 별로 다루질 않는군요.

 

암튼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

 

입버릇처럼 애기하던 독실한 교회 장로이자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기도 했던

 

이승만이 지배하던 48년전 대한민국의 1960년 4.19일 화요일.

1960년 4.19일 그날은 지금와선 피의 화요일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48년전 그날 한국에선 이승만정권의 무차별적인 학살로 인해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행사해 반민주반자유부정부패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던  

시민과 학생들이 서울에서만 104명 부산, 광주에선 27명이 이승만정권에 총살당했습니다.

전국적으로 계산하면 노동자 61명, 고등학생 36명, 무직자 33명, 대학생 22명, 국민학생·중학생 19명,기타 15명으로 총 186명이이승만정부의 실탄발포에 아까운 생명을 잃고 6026명이 부상을 당해 흐르는 끔찍한 피가 펑펑흐르던 날입니다.

결국 그래도 이승만이 계속 정권을 해먹겠다구 버티자 6일후인 4.25일 27개대학 258명의 교수님들이 이승만은 물러가라며 14개항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그후 400명의 대학교수님들이

4.19의거로 쓰러진 학생의 피에 보답하자면서

'이 대통령은 즉시 물러가라', '부정 선거 다시 하라', '살인귀 처단하라'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위를 감행 서울시가를 행진하기 시작했습니다.

4.25 교수단 데모는 전국민적인 지지를 받아 다시 연이어 시민들과 학생들이 연이어 궐기하기 시작하고

이제 이승만을 지켜주던 미국정부마저 이승만에게 하여하는게 낫다고 의견을 제시하자

끝까지 버티던 이승만은 4.26 10시에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을 사임한다고 하야성명을 발표 한후

 

환호하는 시민들이 파고다 공원에 있던 이승만의 동상 목에 줄을 걸고 끌고 다니는 가운데

 

결국 12년간 잔인한 피의 철권독재를 휘두르던 독재자 이승만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민주혁명에 의해 쫓겨나 4.28에 경무대를 떠나 이화장으로 갔다가

 

1960년 5월 29일 부인과 같이 국민들 몰래 미국의 하와이로 도망가 결국은 조국으로 못 돌아오고 해외에서 죽었습니다.

다음은 이러한 시대 48년전 4.19 오늘 이승만정권의 총에 맞은 죽은 15살 한 여중생의 유서입니다.

 

지금 기준으로 봐서도 너무나도 그당시의 상황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진영숙양(15세, 당시 한성여중 2년)의 유서>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 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와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 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어머니,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윌들이 아니면 누구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잘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가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닌,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 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상 이만 그치겠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인 진영숙 양은 19일 오후 4시 학교를 파한 후 시위에 나가기에 앞서 홀몸인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일단 집에 갔다가 시장에 장사하러 나간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자 편지를 써놓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그녀는 성북 경찰서 앞으로 이동하던 버스 에서 구호를 외치다가 (마치 월드컵때 울나라 팀이 이겼을때 버스안에서도 대한민국 하며 했던것처럼...)

 

버스안에도 사격을 하던 경찰에 의해 총살 당했습니다.

 갠적으로 이 어린 소녀의 이 유서를 보면 100%는 아니더라도

 

그당시 목숨걸고 이승만의 퇴진을 요구하다 돌아가시거나 다치신 분들의 생각 이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낄수가 있겠더군요.

 근래 들어 어떤 반민주 비민주적인 신문사에선 이승만을 다시본다며 미화를 하고 있지만 이 4.19 시기에 진영숙 양과 같은 수많은 이름을 알수 없는 조국의 미래를 위해 힘쓰다가 돌아 가신분들이 계시길래 오늘날 우리들이 예전에는 못누리던 엄청난 자유를 느낄수 있는 현실에서 

 

 그분들의 희생과 피위에 세워진 대한민국에서 역사를 거꾸로 할려는 무리들을 보면서 얼마나 분노를 느끼실지 못난 후손들에게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지를 생각하면 이분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밖에 가질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히도 지금 정치권에서 어느당이라도 419혁명에 대해 현재 대한민국을 이룩한 것으로 좋게 평가하는 것에 대해 위안을 삼을뿐입니다..
ps

이승만이 쫓겨나는 계기가 되었던 3.15부정선거 와 대학 교수단 시국 선언문관련 글과 사진입니다.

3·15 부정 선거 지시 비밀 지령

가. 4할 사전 투표 : 투표 당일 자연 기권표와 선거인 명부에 허위 기재한 유령 유권자표, 금전으로 매수하여 기권하게 만든 기권표 등을 그 지역 유권자의 4할 정도씩 만들어, 투표 시작 전에 자유당 후보에게 기표하여 투표함에 미리 넣도록 할 것

나. 3인조 또는 5인조 공개 투표 : 자유당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미리 공작한 유권자로 하여금 3인조 또는 5인조의 팀을 편성시켜, 그 조장이 조원의 기표 상황을 확인한 후 다시 각 조원이 기표한 투표 용지를 자유당측 선거운동원에게 제시하고 투표함에 넣도록 할 것

다. 완장부대 활용 : 자유당측 유권자에게 '자유당'이란 완장을 착용시켜 투표소 부근 분위기를 자유당 일색으로 만들어 야당 성향의 유권자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주어 자유당에게 투표케 할 것

라. 야당 참관인 축출 : 민주당측 참관인을 매수하여 참관을 포기시키거나 여의치 않을 때는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 투표소 밖으로 축출할 것

(『동아일보』, 1960년 3월 4일)


대학 교수단 시국 선언문(1960. 4. 25)

이번 4·19 참사는 우리 학생 운동 사상 최대의 비극이요, 이 나라의 정치적 위길르 극복하기 위한 중대 사태이다. 이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규정(糾正)이 없이는 이 민족의 불행한 운명을 도저히 만회할 길이 없다. 우리 전국 대학교 교수들은 이 비상 시국에 대처하여 양심의 호소로서 다음과 같이 우리의 소신을 선언한다. …

'이 대통령은 즉시 물러가라', '부정 선거 다시 하라', '살인귀 처단하라'

(『동아일보』1960. 4. 26)

 

 

다음사진은 1960년 4월 12일자 부산일보 조간 1면에 나온

 


 



부정선거에 항의하다 행방불명되었다가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상태로
마산 앞바다 에서 시체로 떠올라 발견된 마산상고생 김주열의 시체로

4.19혁명의 불을 당긴 경상남도 마산 시민의거의 도화선이 된 사진입니다.


 위 글과 사진만 보더라도 이당시 이승만정권의 폭정이 어떠 했는지
왜 어린 여중생이 저런 일기를 쓰고 혁명에 가담했어야만 했는지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암튼 저때 피흘리며 돌아가신 수많은 분들..

 

그분들이 보시기에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은 그분들이 피를 흘리며 죽을 값어치가

 

있었던 모습이었는지.. 아닌지..

 

하는 생각이 좀 듭니다...

 

저나이대가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60살전후일텐데..살아계셨다면 최근에 선거에서 어떤선택을 하셨을지도..궁금하다는..

 

 

암튼 오늘 하루...

 

 

다른 더 볼만한 많은 뉴스들이 있지만..

 

그래도 48년전에 누군가 우리들과 동갑이거나 연상이거나 아님

 

훨씬 어린 애들이 오늘날 우리들이 누리는 자유를 얻기 위해 피흘러 죽었다는 사실을

 

(당시 이승만정권이 사람을 너무 많이 총살하는  상황에서 국민학생 애들도

부모님 형,누나를 그만죽이세요 라며 시위에 나섰었습니다. 그래서 역시 많이 총맞아 죽었죠...)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작년 제작년엔 이시기에 3~5달씩 그근처서 노가다를 해서 자연스럽게 구경했었는데

 

요즘은 강남쪽에있다보니 벚꽃을 제대로 못봤는데

 

오늘 친한친구가 여의도 교직원공제회관에서 결혼하길래 갔다가 온김에 근처 벚꽃구경을 했씁니다.

 

여의도 공원을 지나 국회를 가로질러 윤증로쪽을 걸은 코스였는데 그제 비가 와서 그랬는지

 

좀 많이 졌더군요.

 


국회근처에있는 산업은행..정부에서 민영화한다고 해서 말많은곳이죠


국회내인데 인파엄청많았습니다. 이건 국회앞쪽에있는 분수대..

 

 



국회도서관옆쪽으로 윤증로쪽으로 가는길에 있는 건데 여기서 많은 분들이 사진을 찍더군요

 

 



벚꽃이 눈처럼 깔려있더군요.. 제가 거의 막판에왔다는 생각을..^^;

 

암튼 결국 뒤로 빠지니

 

날씨가 비가 금방올거처럼 흐리고 많이  지긴 했어도 그래도 볼만하더군요

 







 



바닥에 워낙 많은 벚꽃이 있어서 그런지 애들이 저걸 눈처럼 뭉쳐서 서로 던지고 놀기도 하더군요

 

그리고 작년에는 없던거

 

같은데 무슨 대회 작품들을 한쪽으로 정리해서 볼수있게 해놓아서 볼것도 나름많았습니다.

 

몇개 기억나는 것만 애기하면

 














 

집에갈려고 버스타는 쪽으로 가다보니

 




것들도 있고

 

윤증로 시작하는곳에는






 

이런게  있더군요. 금년엔 벚꽃축제에다 국제꽃장식작품들을 같이 해서

 

보기엔 풍성했던거 같습니다.

 

단 제가 간날이 흐리고 비가 그제와서 그런지 작년 재작년의 기억속의 벚꽃들보단..약했죠.^^;

 

오늘와서 뉴스보니 그쪽은 벚꽃이 다 졌고

 

남산이나 에버렌드 같은곳이 곧 개화된다고 하더군요..

 

PS

 

글고보니 벚꽃사진들은 별로 없네요..ㅋ^^;

 

벚꽃사진찍은것들은 금년에 찍은것들은 잘 안나와서 작년에

 

찍은것들로 대체하겠습니다.^^;;;;

 

장소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앞쪽부터 국회 근처입니당^^;

 

 

 

 

 

 

 

 

 

 

 

 

이상입니당^^;

일본 의 대도시인 오사카는

 

 





 

비명사한 노다오부나가의 뒤를 이어 일볼66주를 통일한후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뒤질때까지

 

임진왜란을 일으킨 전범 도요토미히데요시의 거성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곳이죠

 

그런데 이도시는 국제적으론 다른거때문에 유명하더군요

 

일본역사책에 나와있는 고대한반도를 점령했다는 신공여왕의 아들 손자들이 묻혀있는데

 

개네들의 무덤크기가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커서죠

 

관련자료가 한국어로 검색하면 안나왔는데

 

몇주전에 방송한 KBS 최인호의 역사추적 - 제4의 제국 가야 제4편-미완의 왕국 에서 응신응 인덕릉들이 나와서

 

많은 사진들이 돌아서 이젠 검색해도 많은 자료들이 나오더군요.

 







이게 신공여제의 아들로 일본의영토를 엄청넓히고 오늘날의 혼슈지역을 장악한걸로 유명한 응신천황의 무덤입니다.

 

(저 공식역사는 일본측 주장이고

 

개인적으론 길어질까봐 이유는 생각하고  말하자면 저는

 

백제계의 진씨귀족 무덤이거나 가야계 추장 무덤이라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이건 응신천황의 아들로 선정을 배풀어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다는 인덕천황의 무덤입니다.

 

이것이 현존 하는 세계 3대(이집트 피라미드,중국 진시황를) 무덤이자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무덤입니다.

 

 

 

고대에 (한국으로 치면 백제,신라,고구려가 치고받던 .. 정확히는 광개토대왕 앞부터 다음시대정도..)

 

저런대규모의 무덤을 지을수 있는 (수십만명이 15년은 걸렸을 거라고 합니다) 능력을 갖춘 일본은 그당시에

 

(일본역사책에 당시 고구려백제신라를 지배했었다고 하니..그러고 1980년대초반까지 un에 비치되어있던

 

영어로된 각국역사책중 한국,일본 책에서도 그렇게 나와있었으니)

 

 

 

제국으로 인식되었고 이런거때문에 1990년대 중반에 MS에서 만든 age of empire 라는 게임에 반영되어

 

당시 게임에 한국관련내용은 없었지만 일본은 고대한반도를 지배한 대제국으로 표시되어 많은 한국인들이 항의했었지만

 

ms가 뭔개소리냐ㅡㅡ 수많은 역사책과 저명한 교수들를 통해 고증받은 게임이라고 했었었죠..ㅠ.ㅠ

 

 



 

ps

 

참고로 저천황를들 옆에도 당시 귀족들 무덤이 여러개있습니다.

 

이런 무덤형태를 전방후원분(쉽게 애기하면 앞쪽은 사각형 뒤는 원형인 무덤들)이라고 하며

 

일본에선 일본의 고유무덤양식이라고 주장하죠

 

일본이외는 저런무덤이 없어서 그동안 국제적으로 그렇게 인식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 몇개 발견되었습니다.

 

하지만 저거보다 연대가 늦어 오히려 일본의 고대한반도지배설을 도와주는 증거가 되는 와중에

 






 

 

2005년에 서울강동구에서 10여개의 전방후원분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어느네티즌이 구글어스에서 두개를 비교분석해서 한국게 더크다!! 라고 결론을 내렸는데

 

그후 학계에선 소식이없습니다. 아파트건설로 무덤이 훼손되었다는 소문도 있고..

 

아직까지 진짜 일본거보다 크다는 그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뭘 발견했는지..

 

일반인인 저는 알수가없네요..ㅡ

 

ps 

 

 재미있는건 지금 오사카는 한국인들이 가장많이 사는 곳 입니다.

 

특히 저 무덤들 주위엔 한국에서도 안쓰는 단어인 백제를 사용한

 

 백제역, 백제소학교, 백제교,백제소학교, 백제대교를 비롯해서 백제천 등등이 있습니다.

 

백제의왕이었던 동성왕과 무령왕의 아버지였던 (고구려장수왕의 백제수도점령시 당시왜지방으로 피신한) 곤지를 모신

 

아스카베신사도 있습니다. 아직도 밝혀진게 별로 없는 한국의 고대사...언제쯤이나 제대로 밝혀질련지..하는 생각중입니다^^;

 

1934 대공황시대 Charles B. Darrow 라는 분이 만든 게임이 있습니다.

 

오늘날 5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즐기는 보드게임의 대명사인

 

블루마블입니다.

 

<SCRIPT type=text/javascript> </SCRIPT>
 
70년넘게 이게임에 나오는 도시들은 주로 미국도시들이었습니다.
 
그것을 이번에 2월29일 까지 미국도시들을 포함한 세계85개 대도시중
 
세계인들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도시로
 
바꾼다고 합니다.
 
현재 오늘의 랭킹입니다.
 
<SCRIPT type=text/javascript> </SCRIPT>
 
▲ 2008/02/08 현재 랭킹 각도시들 랭킹 한국은 없습니다.ㅠ.ㅠ
 
 
이런 외국의 게임에 한국도시가 들어가고 안들어가는게 뭐 별거나? 이런게 경제살리기에 도움이되냐? 이러면 할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경제살리기에 도움은 안되는 거라도
수많은 세계인이 즐기는 보드게임에 한국의 도시중의 하나인 서울을 넣어서
그게임을 즐기는 많은 세계인들이 자연스럽게 한국을 서울을 인식하게된다면
그것은 돈으로 계산할수없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ps
 
그래서 주위에 많이 투표좀 해달라고 권했는데
 
로그인을 해야 하는것때문에 귀찮고 어렵다고 기피들 하길래 제가 직접
 
관련 과정을 정리해봤습니다.
 
www.monopolyworldvote.com 에가서 도시를 고르고 투표를 할려고 하면은
 
로그인을 하라고 합니다. 좀 당황스럽죠
 
하지만
 
<SCRIPT type=text/javascript> </SCRIPT>
  
▲ 투표하기위한 로그인절차 간단한 자기 이메일 비번만 적으면 됩니다.
 
사진설명처럼 진짜 간단하게 이메일주소와 자기만 기억할수있는 비밀번호만 넣으면 가입이되고 투표를 할수있습니다.
 
그후 그사이트에서 각 도시에 대한 내용들을
 
영어로 읽으면서 투표를 할수도 있지만 그런것은 인수위분들에게 맡기고
 
저희처럼 영어가 약한 대다수 사람들은
 
 
에가서
 
<SCRIPT type=text/javascript> </SCRIPT>
  
 
 
오른쪽의 select your country 에서 "한국" 를 고르고 go를 누르면
 
이렇게 안할경우 영어로 보이던
 
<SCRIPT type=text/javascript> </SCRIPT>
  
 
 
사이트가
 
<SCRIPT type=text/javascript> </SCRIPT>
  
 
 
이렇게 바뀌어서
 
다른도시들 정보도 편하게 한글로 볼수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미국이나 서구에서 많은 외국인들이 이게임을 하면서
 
1번쯤 한국의 서울이라는 것에 인식을 하게되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떠돌이처럼 요기저기 왔다갔다하는 제가

 

요즘 일하는곳은 아침출근시 버스가 별로없어서 가끔 택시타고 출근하는 곳에서

 

일하는중입니다.

근처매점이나 자판기등 먹을곳이 없어 가끔 구내식당에서 밥먹고 열심히 왕복 40여분을 걸어서 마트가서 커피를 사오는중이라는ㅠ

다음사진들은  며칠전이지만 눈내릴때랑 야경때 모습들입니다.


식당에서 보이는곳...

 

저곳을 열심히 걸어 20분정도 걸어가면 커피우유등등 파는 가게가 나온다죠..

 




옆에있는 좀비싼 식당 가서 주위를 보면 삭막하긴하지만 그래도 성터가 보이죠..^^;




그래도 밤에 지나가면

 



무슨 먹는 영화랑 드라마에 나오는 곳이라는 비싼 음식점이있습니다

그런데 양식이 아닌 한옥식이라 좀 볼만은 하더군요

크리스마스때  해놓은것들 아직 철거안해서 그런지 춥지만 볼만은 하더라구요^^


암튼

여기가 바로

최근 모언론에서

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8/01/18/200801180195.asp

한국 대통령에겐 없는 3無

라는 제목으로


..(중략)

참여정부도 이 같은 점 때문에 영빈관은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필요성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만약 영빈관을 짓게 되면 어디가 좋을까?


외국의 예로 볼 때 영빈관은 경호 접근성 안락함 세 가지를 갖춰야 한다.


청와대 수석을 지낸 모 인사는 전적으로 사견임을 전제, 최적의 장소로 삼청각을 꼽았다.


경복궁쪽에서 올라가면 삼청터널 지나서 있는 삼청각은 청와대에 인접해 있는 데다 경호 문제

나 주위 경관 등으로 볼 때 영빈관으로 적소라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생략)


라며  차기대통령 이명박의 영빈관으로 적합하다고 했던 곳입니다.




위건물의 바깥부분..

 



낮에보면 이렇게 보입니다.

 

한옥이 자주접할수있는게 아니라 그런지..전 오히려 평소접하지못한 이국적이게 보이더군요.

 

 

ps

 

저 한옥건물은

 

북악산성곽구경가서 보면

 

성벽쪽에서 볼때 이렇게 보입니다.(이때는 한 여름이었습니다)

 

 

 

 

 

 

 

 

 

 


멀리서볼때는 전경이 저런데 막상가까이가서 보면 오히려 전체가 안보인다죠..^^;

보기엔 목조라도 박정희때 지은거라

안은 저격을 방지할수있는 콘크리트로 되어있다고 하더군요

암튼 요즘도 저건물엔 한국사람들이나 외국인들들이 많이 와서 사진찍고 그러더군요

혹시나 영빈관이 생긴다고 해도 이왕이면 다른곳이 되었으면..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대조영을 즐겨보는편인데 역사왜곡은 그렇다고 치고 보는 편이지만..

가끔 나오던 묵철을 다루던 내용 보면 개인적으로 진짜 안습이었습니다.

오늘도 보니 묵철이 보낸 묵철아들과 돌궐장수가 대조영과 발해를 추켜세우는 장면을 보면서..설마 진짜로? 이런생각마저 들더군요.


솔직히 대조영이 세운 발해가 200년넘게 장수한 이유중의 하나가

묵철의 돌궐이 당군을 막아줘서 당군이 직접 발해를 칠수없게 만들어 그사이에 열심히 힘을 키웠던게 주요했거든요.


역사적인 현실은

드라마 처럼 당시 대조영이나 당나라의 설인귀같은 애들이  묵철을 만만하게 보거나 맞장뜰수있는

상태가 아니었는데 너무 만만한넘으로 나오는거 같아서 좀 아쉽더군요.


(돌궐1제국의 영토)

 

역사상 동서양을 아우르는 세계최초의 유목민제국을 세웠던 돌궐은 한때

서돌궐과 동돌궐로 분리되었지만

그강성한 힘때문에

동방에선 중국의  북주,북제가 열심히 섬겼다고 나옵니다.

당시 기록에 돌궐 칸들이 북주와 북제를 자신들에게 많은조공을 바치는 귀여운넘들로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수,당 때도 무시를 못했죠

특히 당제국은 초창기 돌궐의 군사적 지원때문에 커졌던 신속하게 반란을 성공한 국가였습니다.


서방에서도 당시 사산조 페르시아제국과 동로마제국에서 돌궐의 눈치를 봐야했었습니다.

돌궐기마부대가

지금이란의 북부지방을 장악하고

당시 동로마제국의 영토였던 지금의 흑해일대까지 쳐들어가는 상황이라 막기에 급급했으니까요


당시 돌궐칸이 동로마제국황제에게 보낸 지금도 남아있는 편지의 제목은

‘전 세계 일곱 인종의 총사령관, 일곱 기후대의 통치자 카간으로부터 로마황제에게.’

입니다. 돌궐그들의 당당했던 자부심이 10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느껴지는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고구려보다 좀 빠른 시기에 수나라의 1대황제인 문제의 이간질로 인한 내분으로

붕괴되고 잔존세력은 당제국에 치명적으로 망한후 당에 복속하며 용병으로 이용되다가 

대조영의 발해보다 좀 빠른시기에 독립운동이 성공했죠


드라마 대조영에  묵철(默綴, 투르크어 bak-chor의 전사)로 나오는

카파간 카간(Qapaghan Qaghan)은 동동궐 제국을 부흥시킨..정확히 말하면 당제국에 망한 돌궐제1제국을

형인 쿠틀룩과 함께 다시 일으켜 세운 위대한 전사입니다.

중국역사책에선 변방오랑케우두머리였다며 포악어쩌고 하면서 낮추어 악평만 기록했지만

돌궐인들이 직접세우고 여러나라말로 기록해서 남긴 비문에는

돌궐민족의 위대한 민족영웅으로 나옵니다.

그가 형이 죽은 이후 왕이될때가 692년당시 27살..

대조영이 발해를 세울려고 영주에서 거란과 티격태격할때 나이는 많이잡아야 34~5살이었습니다.

현실의 대조영보다 훨씬 어린 청년군주죠

당시 드라마에선 다늙은 할아부지로 나왔지만..^^;



호쇼 차이담(Khosho Tsaidam)의 비문들


당시 많은 고구려후손들도 이 새로운 돌궐정부에 가세해서 고문간 같은 분들은 카파간의 사위가 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암튼 위 지도에 나오는 것처럼 당의 수도 장안가까운곳에 저렇게 커다란 제국을 세워 당시 측천무후가 50만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쳐도

오히려  지고 패하는 와중에 결국 막대한 공물을 바치고 자기가 왕으로세워다가 끌어낸 중종(中宗)의 아들이

그의 딸을 아내로 맞는 것을 허락하게되었었죠


넓은 영토 막강한 국력 을 갖춘 돌궐제2제국을 완성한

당시 카파간 카간(Qapaghan Qaghan)은 지금도 여러책에서 돌궐의마지막 불꽃이라고 칭송받고 있습니다.

저지도에는 안나왔지만 거란의 이진충손만영이  봉기했던 영주지역을

, 역시 드라마에선 좀 이상하게 나왔지만 막강한 군주였던 손만영은 대당제국의 17만대군을 전멸시키고 위력적으로 영토를 넓혀가는

것때문에 돌궐의 경계를 받아 결국  카파간 카간에게 망합니다 . ,

차지하는 덕택에 중국과 지리적으로 분리되어

대조영이 세운 발해는 당시 중국이 돌궐과전력을 다해싸우느라 정신이없는틈을 이용해 국가가 기반을 다지고

국력을 키워 후에

당이 돌궐이 망한후 만주쪽에 눈을 돌려 찝쩍거릴때

과감하게 장문휴 장군을 동원해 산동반도를 공략하고

발해2대황제가 직접 북경일대까지 쳐들어가

당시 당나라가 북경일대에 400km에 이르는 참호를 파 발해의 기마군단을 기동력을 막아 간신히 발해군의 전면적인 남침을 막아내게

했던 막강한 군사력을 키울수있었죠


ps

후일담이지만

돌궐은 결국 위구르 제국에 망하고

구성원대다수는 서쪽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와중에 이슬람을 받아들여




셀주크투르크제국을 세워

이슬람를 대표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해서

동로마제국군대를 만지케르트 전투 에서

 

(당시 동로마제국의 황제는 훌륭한 왕이었지만 기득권을 침해당해 복수의 칼을 갈던  매국노들이 사사건건 반대하고 방해하더니  

결국 전투에서 열심히 투르크군대와 싸우는 황제뒤쪽에서 반대파들이 황제가 죽었다고 외치면서 병사들이 흩어지게 하는 와중에 전투에서 지고 말았죠. 그매국노들은 동로마제국을 차지한이후 투르크가 풀어준 전황제의 눈알을 뽑아 장님으로 만들어 죽입니다.

결국 그들은 권력을 잡는데 성공했지만 나라는 약소국이되어버렸죠)

 

물리치고 당시 동로마제국의 영토의 1/2 인구의 1/2를 장악하는데 성공하고 예루살렘을 차지해서

결국 당시 전유럽이 힘을 모아 십자군원정이란걸 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죠

 

유럽인들입장에선 성전운운하지만 우리눈으로 보면 십자군전쟁이란 결국 당시 예루살렘을 차지한

 

투르크(이슬람으로 개종한 돌궐)vs유럽연합군간의 전쟁일뿐이죠




그후 몽고의 세계정복시대와 티무르제국의 시대를 거친후에

이들의 직계인 오스만투르크족이

지금의 아나톨리아반도전체와 발칸반도 흑해연안 아프리카북부 중동등등을 점령하고

그와중에  바예지드 1세라는 훌륭한 대왕이 나와

 

바예지드 1세는 동로마제국수도인 이스탄불을 제외한 전 발칸발도를 재패하고

당시 부르고뉴 왕이 이끌던 서유렵십자군 수십만명을 니코폴리스 전투 에서 전멸시킵니다.

 

하지만

그후 중앙아시아와 북인도를 평정한 일대 영웅인 티무르와 앙카라에서 양쪽 거의 100만명의 군대를 동원해싸운 전투에서 패해

잡혀죽고 20~30년동안 혼란기를 거쳐 동로마제국의 수명이 몇십년 늘어나게되었죠


(이와중에 당시 발칸의 강대국 세르비아제국군 수십만대군이 코소보에서 용감하게 오스만투르크제국군과 싸우다가 전멸당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세르비아인들에겐 코소보는 자신들의 조상님들이 유럽기독교권을 지키다 죽은 자랑스런 성전으로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코소보에는 원주민 세르비아인들보다 알바니아인들이 많아 그게 평소 세르비아의 반미적인태도와

이지역내에서 기득권을 내세우는 세르비아인들과 현실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알바니아인들간의 인종문제와 역어

나토와 미군에게 인권이 국가의 주권보다 우선이라는 지금도 옳고그름에 말많은 해결안된 핑계로

 

세르비아는 대공습을 당해 큰 피해를 입고 나라가 거의 망했죠.)

 

그후 수십년후 다시 재기한 오스만투르크제국은 마침내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발칸반도부터 북아프리카 이라크에 이르는

 

큰제국을 세웁니다.

 

여담이지만 우리가 드라큘라백작으로 아는 현 루마니아의 전쟁영웅인 당시 왈라키아 공국의 우두머리인 드라귤라백작이 

이당시 오스만투르크제국군의7번에 걸친 공격을 막아내고 이겨냈습니다.

그러나 드라큘라백작이 오스만투르크와의  전쟁때문에 강력한 중앙집권을 추구하는것에 대해 저항하는 매국노들과

 

당시 이지역을 쥐고 흔들던 이탈리아 상인들의 배반으로 결국 8번째는 장렬하게 전사하고 루마니아도 오스만투르크에 점령당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루마니아에선 조국을 지켰던 위대한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고있습니다, 드라큘라백작의 성도 잘보존되어 있죠

암튼 유럽동부에 거주한 돌궐...은 오스만투르크라는 이름으로 

중세~근세 유럽최강의 강대국으로 수백년을 보냅니다

 

마키아밸리가 쓴 군주론의 이상적인 모델이 오스만투르크제국의 황제였죠

암튼

 

그당시 유럽전체가 일치단결해서 오스만투르크제국과 싸웠습니다.

해상에선 레판토해전..

육상에선 1,2차 빈(현 오스트리아 수도)전투에서 간신히 서유럽군대가 이기면서

오스만투르크제국의 14C부터 16C까지 계속되던 오스만투르크의 유럽진출은 17C말부터 중지되었죠.

그러다가 역시 흥망성쇠의 와중에 1차세계대전당시 독일편을 들었다가 망한후에

왕정이 공화제로 바뀌면서 지금의 터키공화국이 되어

6.25때 한국전에서 한군을 도와 군대를 파견해 용맹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당시 미군다음으로 많은 병력이 죽었기때문에 터키도 한국에 대해 나름의 뿌듯한 자부심같은게있고

그런거때문에 형제의나라운운하면서 한국에서 많은 군사무기도 사가는 관계가되었죠..

 

참고로 지금도 중앙아시아일대의 국가중 ~~스탄 이라는 국가들은 터키와 다들 형제국 관계입니다.

같은 돌궐..투르크민족이라서..

 

대조영 보다 보면 엉성하게 나오는 돌궐이 아쉬워서 쓰다보니 길어졌네요.^^;;

 

 



 

tv를 얼핏보니 맥주병 3000개를 사용했고 높이 6m, 지름 5m의 사이즈로 만든 트리가

피아노거리에있다길래 며칠전 퇴근길에 한번 지나가봤습니다.




갠적인 생각이지만 피아노거리의 저것들..진짜 밟을때 피아노소리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이쯤에서 봐도 좀 커보이더군요. 국내에서 맥주병으로 만든것중에 가장큰거라고 했거든요


 


뉴스에선 3천개라고 했는데 진짜 3천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맥주병이 꽤 많아보이더군요..^^
 



행여 종로쪽갈일있는분들.. 잠시시간내서 한번봐보세요

볼만하네요^^

그저깨 평소보다 좀 일찍 퇴근을 했습니다.

비가오는 날이었지만 그전날 처럼 광화문-청계천-시청쪽으로 걸어가봤는데

그전날과 달리 불들이 다 들어와 있더군요.

그래서 비오는날에 우산찍고 걸어가면서 좀 몸은 추웠지만 왠지 즐거워져서

갖고 다니는 조그만디카로 손각대를 벗삼아 몇장찍어봤습니다.^^;

그중 형체를 알수있는 것 몇개 올려봅니다

12월초 서울시내의 청계천과 서울시청근처는 저러구나..정도로 봐주심 좋을거같습니다.^^;



커다란 한기총십자가 달린 트리앞에선 뒤쪽을 배경으로 사진찍는 분들이 많더군요.



비가와서 땅바닦에 물이고여 X자처럼 보이는게 재밌더군요..ㅋ



작년엔 훨크게 했던거 같은데 그제까지는 여기까지만 되어있더군요..



언제나 볼때마다 35억원들어간거 치곤 뭔가 부족한..아쉬워 보이는 왕다슬기..마치 감옥에있는것처럼 보였습니다.ㅋ

 


시청광장앞 잔디밭의 절반정도가 스케이트장으로 바뀌었더군요.



아 방금알았는데 어제 금요일이 정식오픈이었다고 합니다.

전 하루전 과개장때찍은거더군요^^;


트리도 불들어오면 볼만할거 같더군요.






















좀 떨어져서 봐도 빛나더군요.

기분울적할때 보면 웬지 신이나는 루체비스타.. 계속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며칠전 7년을 같이산 깐돌이가 돌아갔습니다.

이넘이 평소에도 전가족이 다 들어와야 안도하고 자고

1명이라도 안들어오면 문지방에서 기달리던 넘이었는데

숨이 꺼질때도 끝까지 버티다가 저들어오고 저희아부지가 들어오니까

4식구 다 있는거 확인하고 안도하고 가더군요..ㅠ

죽은다음에도 그나마 다행히도 그전전날에

집에서 잔털정리해줬고

전날은 어머님이 목욕을 시켜줘서 그런게 윤기나고 깨끗한게 금방이라도 살아올듯한 모습이었습니다

밤새 어머님과 동생은 옆에서 우시구..ㅠ





뭔가 사색하고 있을때 찍은 사진..

 

 

 

털깍으러 가자고 하니까 긴장할때 모습..

 

먹을거 준다는 소린 아니니까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더군요

 

갔다와선 털이 없으니까 춥다고 잠만 잘때의 모습..



기분좋게 자고있을때 찍으니까 찍는소리에 눈뜨는 모습..


 



언제나 저인형물고 노는게 취미였죠..



가끔 뭔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사람눈을 뚫어져라 볼때도 있었구요.



사람처럼 뒤로 누워 자는거 좋아했고

자다가 하품하고 그랬죠



가끔엄마가 애기처럼 저렇게 하면 자기도 신나는지 즐거워했었죠



주인이 안보이면 뛰어놀다가도 어디있는지 꼭 위치확인을 하곤 했었죠.,,




인형가지고 즐겁게 놀때 사진..





가고나니까 이것저것 못해준것들이 생각나 눈물나더군ㅇ

요몇년사이 가장 많이 울었던거 같습니다. 울면서

살아있을때 더 잘해줄것을..하는 생각도 들고

개나이 7년이면 사람나이로 40이라지만

그래도 우리집에선 언제나 막내

애기,아가 로 여겼었는데

글고 최소한 몇년은 더 잘 살걸로 생각했었는데..

인간보다 사람보다 먼저가니 넘 슬프더군요

지금쯤이면 여러날 지났으니

저세상에 잘 가서

잘살고있길 바랄뿐입니다..ㅠ.ㅠ

1년전 이때쯤 태어나서 첨으로 부산에 갈일이 있었습니다.

 

갔다가 시간날때 해운대 용궁사 태종대를 구경했었죠

 

사진은 당시 디카는 2개를 가지고 갔는데 메모리카드를 256M짜리 하나만 가지고 가서

 

용량이 부족할까봐 좀이라도 아낄려고 300만화소로 찍었었습니다

 

사진올린순서는 그냥 중간에 안나오거나 엉망인거 빼고 제가 편하게 걸어서 구경한 순서대로 올렸습니다.

 

부산사는 분들은 상관없지만 타지역분들은 그냥 이렇구나..하고 봐주시면 될것같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다보면 저멀리 용궁사가 보입니다.

 

이때 뭔가 눈에 확들어 오는 용구사를 보면 기분 진짜 뭔가 신기하더군요.

 

 

 

 

ㅋ 좀 부끄러워서..^^;;;;;;;

 

암튼 절이 잘보이는 위치가 이쪽이라 여기서 많이들 사직찍으시더군요.

 

 

 

용주위로 인형들이라고 해야 하나..암튼 귀여운것들이 많았습니다.

 

 

 

 

이런바닷가에 어떻게 이런절을 새웠는지 신기하더군요

 

 

 

 

내려올땐 미쳐 못보고 내려갔는데 올라오다 보니 보이더군요.

 

 

 한국에서 유일하게 바다와 접해있다는

 

용궁사란 곳을 가보니 신기하더군요

 

제가 개신교인이라 절같은곳은 거의 안가봤거든요.

 

동네절도 최근에야 구경갔었으니..^^;

  

여기도 이왕 부산온김에 부산에서 볼만한곳을 가보자!! 했다가

 

추천받고 가본거였죠..

 

 

실제로 저 곳은 사진으로 보이는 이상 볼만합니다.

 

바다바람도 쉬원하구요..

 


서울에선 보기 힘든 경관이라 개인적으로 아주 좋았죠^^

 

여길찍고 좀 쉰다음에 이번엔 태종대로 이동했습니다.






보통은 우리가교과서에서 배운 서울과 충청도의 공주사비가 중심지였던 백제 ,

사서에만 주로 나오는 중국에 있던 백제를인대륙백제 또는 외백제라고 부르는것을

태왕사신기에선 서백제 동백제라는 표현을 사용하더군요.



표현이야 어떻든간에 대충 tv로 보이는 지도의 상황은 위와 비슷하게 설정을 한거 같더군요

담덕이 우리도 바다를 가져야한다 어짜구 하는것을 보니..


참고로 두번째 지도에 나오는 근초고왕은 고구려를 공격해서 광개토태왕의 할아버지인..

소수림왕과 고국양왕의 아버지인 고국원왕을 목을 자른 왕(정확히는 군대를 이끌고 있던 근구수왕이죠..^^;입니다.)


암튼 한국교과서에 별볼일없는 약소국으로 나오는 백제는

드라마 주몽에서 고구려를 괴롭히던 만주북부의 부여를 쳐서 수도를 함락시켜 거의 망하게 한 국가입니다.

(물론 일본,한국,중국 학자들은 잘못된 기록이라고 주장중입니다)


tv에 나온 서백제,동백제관련기록들도 중국이 자신들의 공식역사책이라고 지정한 24개의 역사책에


중국의 위촉오의 삼국시대를 통일한 대진제국이 자신들의 내전에 변방 타민족을 끌어들여 진제국이 망한 ..

결국 5호16국이라는 전란의 시기에

백제가 대진제국을 침략해 요서군과 진평군등을 설치했다는 기록때문에 시작했죠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라는 우리나라 역사책엔 그런기록이 없기때문에

역시 일본학자들과 한국학자들은 잘못된 기록 개구라,뻥..이라고 하는중입니다

교과서에는 무역활동을 위한 백제의해외진출..식으로만 나오죠


그후에

5호16국의 시대를 종결짓고 중국북부를 통일한

말타던 오랑캐라 강을 못건너 양쯔강 남쪽의 한족국가들을 못치고 있을때

선비족의 북위 제국이

수십만 기병을 동원해 백제를2번 치는 전쟁기록이 있습니다.

백제의 동성대왕이 자기밑의 8왕을 거느리고 북위의 기병수십만명을

전멸에 가깝게 물리친 대승리를 거두고 당시 남조국가들에게 이러이러하게 이겼다..라고

자랑하는 편지가  중국역사책과 한국의 삼국사기에 남아있는데 역시나 한국학자들과 일본학자들은 잘못된 기록

개구라 뻥 소설!! 이러는 중입니다.

뭐 일본은 임나일본부운운하며 백제는 일본의 속국운운하면서

한때 지네 국보2호였던 고대의 커다란 청동으로 만든 거울에

백제무령왕(이름은 사마)이 일본천황에게 남제왕운운하며

---------
계미년 8월 10일 대왕년 남제왕이 의자사가 궁에 머물때 , 사마
가 장수를 염원하며 개중비직 세인 금주리등 2인을 보내 좋은 백
동 2백간을 모아 이거울을 만들었다.

---------


라고 보낸 기록되어있는것에 대해서 조용히 입다물고있는중이죠

지네 역사책에 나와있는

민달천황(閔達天皇)은 원년(572) 10월에 왕실을 위해 백제대정(百濟大井)에 궁궐을 만들었다

 

서명천황 11년(639) 가을 7월에는 백제천 가에 궁전을 지었는데 이름을 백제궁이라 했다.

서명 재위 13년(641) 겨울 10월 9일에 제명천황이 백제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 같은 달 18일에는 백제궁 북쪽에다 빈궁을 설치하니 이름을 백제대빈(百濟大嬪)이라 했다.


는 기록이나 백제가 망할때 당시일본귀족들과 왕족들이

이제 조상의묘에 언제 어떻게 산소를 하러가냐며 울고불고 난리쳤다는 기록에 대해서도 조용히 입다물고있는중이구요

한국에서도 조용히..입다물고..ㅋ

참고로  일본의 공식입장은 일본원주민인 아이누족과 달리 일본인들은  하늘에서 뚝떨어진 이른바 천손강림한 족이라 

일본인들은 선택받은 민족 입니다..ㅡㅡ

아 일본말중에 くだらない 라는 말이있습니다.시시하다. 형편없다. 볼품없다. 뭐 이런말인데 くだら는 '큰 나라', 곧 섬기는 나라, 본국, 대국(大國)이라는 뜻이면서 동시에 백제를 뜻하는 말로 쓰이는 즉..  くだらない 는 백제것이 아니다!! 라는 말이죠..ㅋ

글고보니 쓰다보니 삼천포로 빠지네요..^^;

암튼 한국고대사는  아직 통일신라의 영토조차 밝혀내지못하고있습니다.

중국역사책인 만주원류고에 통일신라가 한때 북경까지 점령하고 어짜고 하지만

우리나라학자들과 일본학자들은 개구라뻥소설 잘못된기록..이라고 하면서

일본학자들이 한국에 알려준대로 대동강~원산

이것만 교과서에서 배우는 정도니..ㅡ

나중에라도 드라마에서 표현되는 일회성이 아닌.. 제대로 한국고대사가 연구되서

백제의 정확한 영토가 어느정도되는지 밝혀지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ps 우리나라에서 60년대에 연세대 교수님들이 구석기시대유물을  발견해서 전세계적으로 몇십만년전

거라고 인정해줬어도 한국내..(울나라 사학과는 일제시대이완용이조카였던 이병도 ,한국사의 3대역정으로 김유신,이병도,이성계를치져..ㅋ , 와 일본학자들의 제자들이 주축이라..선배이자 선생이었던 일본학자님들의 의견이나 학설에 맹종하는 분위기가 좀강했다고 하더군요)

에는 한국이 일본보다 앞선시기의 유물들이 발견될리가 없다!! 이래서 80년대까지 교과서에안실리디가 한국내 친일학자들대가들 몇몇죽고 난후 일본학계에서도 인정한이후에야 실렸죠 ㅡㅡ , 요즘 국사교과서 보면 지도에 구석기,신석기시대유물발견지 가 수백개깔려있죠

왠만한 나라들은 구석기유물이 발견되는 경우가 거의없습니다.  참고로 고인돌만 해도 전세계에서 발견된 고인돌이 8만개정도인데 남북한에서발견되게 6만개입니다  ,
,

백제가 일본(대야마토제국이라고 하죠..ㅡㅡ)의 식민지 속국이라는게 현일본의 주장이 바뀌면 제가 생각하는게 더 빨라지지않을까? 생각도 가끔합니다.^^;



며칠전  한강위를 지날일이 있었는데 진짜 날씨 좋더군요.











가을에 구름한점없는 밝고 맑은 날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지만

개인적으로 적당히 볼만한 구름이 있는 날이 좋더군요..^^;'

ps

용산지나다보니




중국영화제어짜구 그런게 하고있더군요. 관심있던 분들은 가보시면 도움이 될듯했습니다.



용산역밖을 보니 예전엔 국제빌딩밖에없었는데 어느새 옆에 비슷한 크기의 아파트(or 오피스텔..)들이 쫙쫙들어서고 있더군요.

미군부지에 정부나 서울시가 계획하는것들이 다 이뤄지면 꽤 볼만하게 바뀔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년전에 비오던 8월어느날밤 지나가다 보니 장관이더군요.

그당시 광복60주년 기념으로 한것이라 아마 당분간은 다신 안할것이라는 생각에 
 
비맞아가며 몇장 찍어 봤었습니다

 

 

[3천장이 넘는 태극기는 가까이서 보니 장관이었습니다]

 

 

[비오는 와중에도 신나게 노는 애들. 어린게 좋아보이더군요]

그리고 나서 다시 1년여가 지난 작년 8월 어느날 그근처를 지나가다 보니

또 장관이 연출되고있더군요.

 

 

[수천개의 청사초롱의 밝은 모습 역시 가까이서 보니 장관이었습니다]

 


[여전히 뛰노는 애들..ㅋ 저 뒤에선 당시 전지현나오던..영화상영중..]

 

 


[분수대에서 신나게 노는 애들]

 

 

 

[꺼졌어도 볼만하더군요]


근데 옆에 지나가던 할아버지들 3명이서 이런애길 하더군요

저거 왠지 인공기 같지 않어?

오세훈그넘도 빨XX래!

설마 그래도 한나라당출신이데..

이런 시대착오적인 애길 들으며



지나가면서 친구랑 이런 애기를 했습니다.



서울시장들이 ?나라당이 아닌 ?노당이나 ??당 출신이었다면

저렇게 하는것에 대해 어떤언론들은 시민혈세로 경제살려라! 이러면

서 반대하고 ?나라당이 장악한 서울시의회에선 대권욕에 눈이멀어

서울시민혈세로 낭비를 일삼는다는 소설로 헛소리를 하면서 탄핵을 하고 있

지않을까?


웃으면서 하는 애기지만 ?나라당출신서울시장들이 계속해서 이런이

벤트를 1년에1번씩이라도 꾸준히 계속해서 나중에 어떤당출신 시장이 되어도

 

이런 이벤트를 자연스럽게 계속 할수 있기

를 바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분명히 모든것을 돈으로 계산하는 분들입장에선 아까운 혈세낭비겠지만 이런

 

것을 통해 생기는 유무형의 뭔가는 분명히 값어치가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암튼

역시 오늘도 야근중 잠시 머리좀 식힐려고 나왔다가

음악듣다 좀 걷다 보니 역시 8월이라 그런지 또 뭔가 하고있더군요.


[약간 어두울때..]


[슬슬 밝아질때..]


 

[꽤 밝았을때..]

 



[초록색으로..]



[파랑에서 빨간색으로..]


[찐한 빨간색으로..]

이렇게 대형무궁화를 보니 재밌더군요^^;



[20층인가? 30층인가? 암튼 새로운 시청을 건설하고있는곳..지근거리에 있는 덕수궁이랑 너무 가까워 말이 좀 많습니다.] 

암튼 8월에 서울시청을 지날때는 무슨이벤트를 하고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즐겁습니다.

시장이 바뀌더라도 그가 속한 정당이 어떻더라도..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딴지안걸고

이런이벤트는 계속했으면..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행정수도 이전하자   --------   왜 하필 지금이냐?

사학법 개정하자   ----------   왜 하필 지금이냐?

만나서 논의하자   ----------   왜 하필 지금이냐?

대연정 같이하자   ----------   왜 하필 지금이냐?

친일파 진상규명을 하자   ---   왜 하필 지금이냐?

전시작전 통제권 환수하자  --  왜 하필 지금이냐?

부동산 세제를 개혁하자   ----  왜 하필 지금이냐?

판사 명단 발표하자   --------  왜 하필 지금이냐?

지역균형발전 특별법을    ----  왜 하필 지금이냐?

대통령 연임제로 개헌하자   --  왜 하필 지금이냐?

공공기관 지방이전 하자   ----  왜 하필 지금이냐?

화장실에 가고싶다   ---------  왜 하필 지금이냐?


라며 대안도 없이 정책도 없이 반대하는 정치세력과 종교세력들이 대한민국에 많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남북정상회담을 하자!! 고 하면


대다수 우방국들과 세계언론들, 내외에많은 경제관련기관들이


남과북 양정상이 만나는거 자체로도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언제라도 전쟁을 벌일수있는 상태로

수백만대군이 마주하고 있는 남북한 양국의

전쟁발발가능성이 떨어져


대한민국 평화체제구축 그로인한 대국민국 앞날의 불확실성제거와

그로인한 코리아디스카운드로 저평가된 한국경제의 재평가와 그로인한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한 평화정착이 결국 대한민국

경제성장에 엄청난 플러스가 된다는 것을 알고있어도


대안도 없이 정책도 없이 반대하는 곳에선 그런이득은


전혀고려안하고 자신들의 당리당략에 의거해 무조건

남북정상회담하는것마저 왜 하필 지금이냐? 이러면서 반대합니다.


그런분들에겐

이참에 남북평화 아님 전쟁재발방지를 위해 남북한정상이 안만나고 어떻게 해결할수있는지

대안을 제시하라고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안도없이 무작정 이핑계저핑계로 반대만 한다면 결국 그것은

남북양국의 정상이 만나는 것을 반대하고

그로인해 발생할모든 이득들을 반대하고

 

결국 대안은 전쟁밖에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으로 무책임하게 아무런 대안없이 

그냥 이땅에 언젠가 전쟁을 불려들여 이땅을 불바다로 많들어 수많은 한국인들을 고통과참화속에 넣겠다는 무책임 그자체

라고 생각합니다.


 이참에 평화세력과 전쟁추구세력을 구별해서 무엇이 이대한민국에 더큰 이득을 주는지를 확실하게 판가름할때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국회내 최고의 쪽수를 가진 한나라당과 5만교회 1천만 신도를 자랑하는 한기총이 선거철에 이런법안을 통과시킬려고 용쓴다면 당연히 통과될거라고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단 통과는 시키되

 

통과이전에

 

 평일 국가시험을 볼 때는 휴가를 사용할 수 있게 한다든지 보안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하셨죠?

대다수 국민들이 납득할수있게 보안책을 세워

모든기업들이 언제든지 평일시험을 위해 고용인들에게

휴가를 사용할수있게 해주십시요.

 

그리고 통과시에는

 

꼭 1가지 조건을 달아서 통과시켜주시길 바랍니다.

 

무궁한 대한민국역사의 흐름속에 나중에 일요일에 예배보는 개신교가 아닌 타요일을 중시하는 종교가 개신교보다 세력이 커질경우 그 종교가 요청할경우 언제든지 그날을 시험안보는 날로 정해준다는 한나라당과 한기총에서 대국민약속을 꼭 하고 통과시켜주시길 바랍니다.

 

즉 훗날 한국내에 이슬람교신자들이 많아지면 그들을 위해서 금요일 시험을 금지하고,
제7일 안식일예수재림교나 유대교가 많아지면 토요일 시험을 금지시켜줘서 형평성에 맞는
행동을 하겠다고 약속해 달라는 겁니다.

 

훗날 그런일이 생길경우  잡다한 문제가 생겨 국민단결이 망가질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어제 밤에 모처럼 일찍 퇴근을 해서 집에와서 빈둥대다가

갑자기 디워가 보고싶어져 동네극장에 갔습니다.

반바지에 샌달신고 10여분만 걸으면 되는곳이라..

가서 표없음 산책했다치고 오고 아님 봐보자..이런생각으로..^^;;



오른쪽의 노란 버스는  일반버스가 아닌 경찰버스입니다.

이랜드관련 문제로 여기저기 매장서 노사가 대치하는 상황이라 여기도 만약의 사태대비를 위해 많은 경찰력이 곳곳에있었습니다.

그래도 야밤에 24시간 운영하는곳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북적되더군요



극장곳곳에 보이던 포스터들..

전에 트랜스포머와 화려한휴가보러왔을때 못찍어본지라 한번 찰칵..^^;;



이영화는 개인적으론 스케일부분은 차라리 당시 외신이 찍은 다큐멘터리가 훨낫다..입니다.
다큐멘터리에선 목숨걸로 항의하는 수백대의 버스운전사분들의 전남도청앞 버스돌진이
영화에선 딸랑 1대라..김이 좀 샜다는..^^;

그리고 주인공들이 자기네 고향사투리 안쓰고 표준어 쓰는게 좀 어색했다는..
그래도 재미는 있고 볼만한 값어치는 있다고 생각중입니다.



글고 보니 이무기는 어떤 저주에 의하여 용이 되지 못하고 물속에 산다는, 여러 해 묵은 큰 구렁이이자 전설상의 동물로 뿔이 없는 용이라고 들었는데 원래 용처럼 발이나 손이없는건지..궁금중이 잠시 생겼습니다.^^;



밤인데도 사람많더군요. 제가 본건 표끊은 이후 몇분후에 매진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늦게끊어서 자리는 d14라 꽤 앞이었다는..








상영관은 이극장에서 가장 큰관이라고 하더군요

들어가서 영화를 봤는데

앞으로 헐리우드던 충무로든 심형래감독이상의 cg를 써야 sf물을 만들었다고

명함내밀수있겠다는 생각들더군요.

아무래도 상영시관이 90여분이라 굉장히 짧은 시간이란 생각들지만

그덕에 드라마는 좀 약하게 느껴지지만..

중간중간 웃을수 있는 코믹한요소들은 꽤 즐거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시각적으로 볼만한게 넘 많아서 역시 이영화는 그런쪽에서 굉장히 만족감이 든다는 생각입니다.

나중에 극장판이 아닌 tv물로 내용좀 살을 붙어 만들면 그것도 어떨까 하는 생각들었습니다.




영화끝나고 11시넘어서 나오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왔더군요.

저중에 상당수는 디워쪽이라는..

암튼 올만에 아니..우뢰매이후 첨인거 같기도 한데 암튼 잘만든 한국 sf영화 잘봤다고 생각하며

이정도면 충분히 흥행대박날수있을거라는 생각들더군요

울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기타 세계에서도 대박나길 바래봅니다.^^;

ps

맨마지막에 나오는 아리랑..메이저언론들은 그걸로 트집잡지만 제가 볼땐 굉장히 맘에 들었습니다.

아리랑 음악이 저렇게 영화엔딩이랑 어울리는구나..라는 생각들더군요

더불어 심형래감독의 예전사진들과 글이 올라갈때 참 가슴뭉클하더군요.

아직도 심형래를 감독으로 인정안하는 충무로...

디워찍을돈이면 그돈으로 영화수백개 만들겠다고 떠드는 감독들..

같은 장르에서 심감독의 작품만한 것을 만들고 떠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나라에선 대인공격무기이자 화학무기인  다타두최루탄을 시민들에게 직접 쏘는 것에 항의해

부산에서 어떤 청년이 최루탄을 쏘지말라며 달려가던 사진

 

이사진은 1999년 AP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사진'에 포함되었습니다

 

 

20년전 오늘 연세대내에서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님

 

▲ 6월민주항쟁 20주년을 앞두고 9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20주기

추모제에서 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 87년 7월 연세대 교문을 나서 천리길 고향 광주로 향하는 이한열 열사의 장례행렬.

 

이한열님이 살아있을당시 평소의 모습

 

 

장례식때 시청 앞 광장

 

 

고 박종철 씨가 고문을 당하다 죽었던 옛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를 방문한 고인의 부친 박정기님

 

 

지금처럼 국민이 대통령을 뽑던 시절이 아닌..

 

군부쿠테타로 수많은 사람 총으로 죽이고 된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수백명의 사람들이 체육관에 모여 대통령을 뽑던 1980년대..

 

그래서 당시에 정상적인 자유민주주의국가들처럼 국민이 대통령을 선거로 뽑을수있게 헌법을 개정하자고 하자  

 

당시 전두환정부는 다음 대통령도 체육관에서 전두환이 지명하는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뽑겠다며

현재의 헌법을 지키겠다며 호헌선언(헌법을 지킨다)을 하며 대치하던 20년전..(2007학번 새내기들이 태어나던 해더군요..)

 

1987년 1월14일에 알고있던 선배가 데모한다구 대신 끌려가 그선배있을만한 곳을 불라며

 

물고문전기고문당하고 맞다가 숨진 박종철님..

 

(전두환정부의 공식발표는 평소 지병이 있어 마음이 심약했던 박종철군이 고문관들이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 였었죠...

결국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덕에 시체부검 결과 전기고문과 물고문에 의한 살인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

 

기타많은 분들이 다치고 죽어가다가 결국

 

세계역사에  6.10 항쟁으로 불리는 대규모민주화운동으로 발전 수많은 국민들이 죽어가는 속에 

 

 

(당시 제자들이 죽는것을 보고 일어선 연세대 교수님들)

 

 

 

(당시 6월달의 일반적인 모습..아직도 남아있는 전세계적으로 악명높은

 

보안법이나 집시법에 의하면 국가의 허락없이 대로에서 2,3사람이상이 모여있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그럴경우 언제든지 공권력을 행사할수 있습니다. 이 두악법은 아직도 못고치고 있죠

 

 

 

 

 

(우리나라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인 대기업직원들인 넥타이부대의 시위참여..)

 

 

(박종철군장례식)

 

 

 

 

(시민들의 자발적인 국민장을 막을려고 그사이에다 최루탄을 쏘던 모습..이건 외국기자가 찍어 역시 해외톱으로

당시 한국분위기를 알렸다고 하더군여

 

참고로 당시 전두환정부는  국내 기자들이 옥상에 올라가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어마어마한 군중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어서 관련 기사가 나가면 안좋으니.. 그래서 이런 사진들은 주로 외국인기자들이

많이 남겼다고 하더군요)

 

결국 체육관에서 전두환에의해 차기 대통령으로 지명(or 임명)된 노태우가 

 

6월29에

 

대통령을 체육관이 아닌 국민들이 참여하는 선거로 뽑겠다는 대국민항복선언을 하게 만들었죠.

 

 

그결과는 불과 20년전만 해도 대통령모독죄니 이런게 있던 대한민국에서 요즘처럼 엄청난 언론 자유를 누릴수있는 시대가되었구요..

 

 

지금와서 저 사진들에 나오거나 안나오는 죽어간 수많은 분들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들이 당시독재정권에 살해되지 않구 오늘날까지 살아게신다면 나이는 이제 40살전후일테구 결혼을

 

하셨다면 중학교다 고등or대학교

 

다니는 애1,2정도를 가진 중년남자들로서 일반인들 처럼 정상적인 보통의삶을 사셨을건데...

 

 

그렇지 못하고 당시 시대상황속에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수많은 분들..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분들이 바라던 국가가되었는지...

 

 

 

대통령당시 때먹은 국민혈세 수조원에 대한 벌금으로 몇천억원내라고 하니까 2~300억만 내놓곤

 

나머지는 못내겠다면서 29만원밖에 없다고 아내명의의 수십억짜리 집에서 버티는 전두환을 보면서...

 

 



그분의 아들(아들중에 하나는 국내3대 출판사인 재산600억원의 시공사 사장님이시죠..나머지도 당 강남땅부자들..) 딸들

게다가 재산이 보통 20,30~40억원대라는 손자손녀들(어린나이네 벌써 수십억원짜리 빌딩을 몇채가지고 있는 그손녀중의 하는 몇년전 유럽

 

여행갔다와서 싸이에 유럽이 한국보다 멋있다..한국은 후지다이러다가 난리났었죠..)



잘먹고잘사는 현실을 보면서..뭔가 아이러닉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도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몇백명이 모여 뽑고 있고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국가라고 구라치는 개념없는 국가였다면

 

우리나라가 지금도 맘에 안드는 것이 많지만 더 쫍팔렸을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20년전 이때쯤 지금 저희가 살고있는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하신 수많은 분들..

 

그리고 그 희생때문에 고통받고 사는 수많은 분들..

 

에게 고마움이 느껴지네요..

 

어제 퇴근길에 맥주한잔 가볍게 먹고 버스타고 가다 남대문에 내렸다가

 

버스타고 집에간다는 생각이

 

갑자기 바뀌어서 서울시청 청계천 근처를 돌아

 

다녔는데 이번에 청계천 Luci-Festa  때문에 밤에 볼것이 많더군요.

 

이것저것 찍어본것중 형체를 알아볼수있게 나온거 몇장 올려봅니다^^;;

 

 자세한건 모르겠지만 은하수라고 해야 하나? 그런게 컨셉인거 같더군요..

 

 

낮에 볼땐 모르겠지만 밤에 저렇게 떠있는것을 보니 재밌더군요^^

 

 

한국역사상최고액이라는 35억원짜리 왕다슬기는 저거자체만 보면 꽤 큰데 같이 보다보면

 

아무래도

 

옆에 동아일보건물때문에 좀 초라하게 보였습니다.

 

 

저번에 청계천 사진 올릴때 뭐지 했던 구조물이.. 이렇게 빛이 나니까 달라보이더군요

 

 

가까기 가서 보니 계속 조명색깔이 바뀌는게 볼만했습니다

 

 

길양쪽에는 빛나는 망사라고 해야하나? 그런식의 조형물들이 많았습니다. 그중에 제가보기에 인상적이던거..^^;

 

 

잠시 목말라서 밖으로 나갈때..

 

 

길거리에서 팔던 인형들..ㅋ

 

안에서 볼때랑 밖에서 볼때랑 뭔가 달라보이더군요

 

 

 

 

이렇게 보니 왠지 ufo가 내려오다 만것처럼 보이더군요

 

 

제 똑딱이에 있는 사진3장이어붙이기 기능을 사용해본거.. 뭐 눈으로 볼때랑 약간은 다릅니다^^;;

 

 

 

이것도 역시 2,3장 이어붙이기 해본거..^^; 약간 왜곡은 있지만..암튼 이랬습니다.

 

 

 

 

평소보다 빠른 8시에 퇴근하니 갈곳이 애매해서

 

모처럼 시간나서 한강야경이나 보고싶어 걷다보니 저쪽에서 뭘 하는지 시끌시끌하길래 가보니

 

서울페스티벌하고 있어서 보다가

 

근처에서 지하철이나 버스타는 곳을 못찾아 원효대교쪽으로 해서 건너가고 있었는데

 

불꽃놀이를 시작하는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내가 애지중지하는

 

자동디카인 v570를 꺼내찍어봤지만,,ㅜ.ㅜ

 

손각대라 많이 흔들리고 좀 그렇지만

 

그래도 형체를 알아볼수있는거 몇개 올린거..ㅋ

 

 

 

 

 

 

 

 

 

 

 

 

 

 

 

 

 

 

 

 

 

 

 

 

 

 

 

 

 

평소보다 빠른 8시에 퇴근하니 갈곳이 애매해서

 

모처럼 시간나서 한강야경이나 보고싶어 걷다보니 저쪽에서 뭘 하는지 시끌시끌하길래 가보니

 

서울페스티벌하고 있어서 보다가

 

근처에서 지하철이나 버스타는 곳을 못찾아 원효대교쪽으로 해서 건너가고 있었는데

 

불꽃놀이를 시작하는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내가 애지중지하는

 

자동디카인 v570를 꺼내찍어봤지만,,ㅜ.ㅜ

 

손각대라 많이 흔들리고 좀 그렇지만

 

그래도 형체를 알아볼수있는거 몇개 올린거..ㅋ

 

 

 

 

 

 

 

 

 

 

 

 

 

 

 

 

 

 

 

 

 

 

 

 

 

 

 

이번에 수십년전에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넘이 미국인들 30여명을 죽여 말이 많습니다

 

좀 예전이긴 하지만..47년전 대한민국은 저런 일개미치광이가 아닌

 

정부차원에서 수백명의 민간인들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미치광이 정부를 타도한 47년째 되는 날인데

 

너무 예전이야기인지 언론에서도 별로 다루질 않는군요.

 

암튼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 입버릇처럼 애기하던 독실한 교회 장로이자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기도 했던 이승만이 지배하던 46년전 대한민국의 1960년 4.19일 화요일.

1960년 4.19일 그날은 지금와선 피의 화요일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47년전 그날 한국에선 이승만정권의 무차별적인 학살로 인해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행사하며 반민주반자유부정부패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던  시민과 학생들이 서울에서만 104명 부산, 광주에선 27명이 이승만정권에 총살당했습니다.

전국적으로 계산하면 노동자 61명, 고등학생 36명, 무직자 33명, 대학생 22명, 국민학생·중학생 19명,기타 15명으로 총 186명이 실탄발포에 아까운 생명을 잃고 6026명이 부상을 당해 흐르는 끔찍한 피가 펑펑흐르던 날입니다.

결국 그래도 이승만이 계속 정권을 해먹겠다구 버티자 6일후인 4.25일 27개대학 258명의 교수님들이 이승만은 물러가라며 14개항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그후 400명의 대학교수님들이

4.19의거로 쓰러진 학생의 피에 보답하자면서

'이 대통령은 즉시 물러가라', '부정 선거 다시 하라', '살인귀 처단하라'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위를 감행 서울시가를 행진하기 시작했습니다.

4.25 교수단 데모는 전국민적인 지지를 받아 다시 연이어 시민들과 학생들이 연이어 궐기하기 시작하자 4.26 10시 이승만은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을 사임한다고 하야성명을 발표 한후

 

환호하는 시민들이 파고다 공원에 있던 이승만의 동상 목에 줄을 걸고 끌고 다니는 가운데

 

결국 12년간 잔인한 철권독재를 휘두르던 독재자 이승만은 대한민국 국민의 민주혁명으로 4.28에 경무대를 떠나 이화장으로 갔다가

 

1960년 5월 29일 부인과 같이 몰래 미국의 하와이로 도망가 결국은 조국으로 못 돌아오고 해외에서 죽었습니다.

다음은 이러한 시대 47년전 4.19 오늘 이승만정권의 총에 맞은 죽은 15살 한 여중생의 유서입니다. 지금 기준으로 봐서도 너무나도 그당시의 상황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진영숙양(15세, 당시 한성여중 2년)의 유서>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 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와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 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어머니,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윌들이 아니면 누구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잘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가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닌,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 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상 이만 그치겠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인 진영숙 양은 19일 오후 4시 학교를 파한 후 시위에 나가기에 앞서 홀몸인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일단 집에 갔다가 시장에 장사하러 나간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자 편지를 써놓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그녀는 성북 경찰서 앞에서 버스 차창 밖으로 머리를 내민 채 구호를 외치다가

경찰에 총살 당했습니다.

 갠적으로 이 어린 소녀의 이 유서를 보면 그당시 목숨걸고 이승만의 퇴진을 요구하다 돌아가시거나 다치신 분들의 생각 이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낄수가 있겠더군요.

 근래 들어 어떤 반민주 비민주적인 신문사에선 이승만을 다시본다며 미화를 하고 있지만 이 4.19 시기에 진영숙 양과 같은 수많은 이름을 알수 없는 조국의 미래를 위해 힘쓰다가 돌아 가신분들이 계시길래 오늘날 우리들이 예전에는 못누리던 엄청난 자유를 느낄수 있는 현실에서 

 

 그분들의 희생과 피위에 세워진 대한민국에서 역사를 거꾸로 할려는 무리들을 보면서 얼마나 분노를 느끼실지 못난 후손들에게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지를 생각하면 이분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밖에 가질수가 없습니다.

ps

이승만이 쫗겨나는 계기가 되었던 3.15부정선거 와 대학 교수단 시국 선언문관련 글과 사진입니다.

3·15 부정 선거 지시 비밀 지령

가. 4할 사전 투표 : 투표 당일 자연 기권표와 선거인 명부에 허위 기재한 유령 유권자표, 금전으로 매수하여 기권하게 만든 기권표 등을 그 지역 유권자의 4할 정도씩 만들어, 투표 시작 전에 자유당 후보에게 기표하여 투표함에 미리 넣도록 할 것

나. 3인조 또는 5인조 공개 투표 : 자유당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미리 공작한 유권자로 하여금 3인조 또는 5인조의 팀을 편성시켜, 그 조장이 조원의 기표 상황을 확인한 후 다시 각 조원이 기표한 투표 용지를 자유당측 선거운동원에게 제시하고 투표함에 넣도록 할 것

다. 완장부대 활용 : 자유당측 유권자에게 '자유당'이란 완장을 착용시켜 투표소 부근 분위기를 자유당 일색으로 만들어 야당 성향의 유권자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주어 자유당에게 투표케 할 것

라. 야당 참관인 축출 : 민주당측 참관인을 매수하여 참관을 포기시키거나 여의치 않을 때는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 투표소 밖으로 축출할 것

(『동아일보』, 1960년 3월 4일)


대학 교수단 시국 선언문(1960. 4. 25)

이번 4·19 참사는 우리 학생 운동 사상 최대의 비극이요, 이 나라의 정치적 위길르 극복하기 위한 중대 사태이다. 이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규정(糾正)이 없이는 이 민족의 불행한 운명을 도저히 만회할 길이 없다. 우리 전국 대학교 교수들은 이 비상 시국에 대처하여 양심의 호소로서 다음과 같이 우리의 소신을 선언한다. …

'이 대통령은 즉시 물러가라', '부정 선거 다시 하라', '살인귀 처단하라'

(『동아일보』1960. 4. 26)

 

 

다음사진은 1960년 4월 12일자 부산일보 조간 1면에 나온




부정선거에 항의하다 행방불명되었다가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상태로
마산 앞바다 에서 시체로 떠올라 발견된 마산상고생 김주열의 시체로

4.19혁명의 불을 당긴 경상남도 마산 시민의거의 도화선이 된 사진입니다.


 위 글과 사진만 보더라도 이당시 이승만정권의 폭정이 어떠 했는지
왜 어린 여중생이 저런 일기를 쓰고 혁명에 가담했어야만 했는지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암튼 저때 피흘리며 돌아가신 수많은 분들..

 

그분들이 보시기에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은 그분들이 피를 흘리며 죽을 값어치가

 

있었던 모습이었는지.. 아닌지..

 

하는 생각이 좀 듭니다...

 

암튼 오늘 하루...

 

 

다른 더 볼만한 많은 뉴스들이 있지만..

 

그래도 47년전에 누군가 우리들과 동갑이거나 연상이거나 아님

 

훨어린 애들이 오늘날 우리들이 누리는 자유를 얻기 위해 피흘러 죽었다는 사실을

 

 

(당시 이승만정권이 사람을 너무 많이 총살하는  상황에서 국민학생 애들도 부모님 형,누나를 그만죽이세요 라며 시위에 나섰었죠..)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ps

 

 저 사진은 수십마디 글보다 47년전 오늘을 더 확실히 느낄수 있게 해줄수 있다는

많은 생각을 한끝에 올렸습니다.  보기에 좀 심장이 떨리거나 역겨운 사진이라는 둥의

지적이 나온다면 그때는 링크로 바꾸겠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