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퇴근길에 맥주한잔 가볍게 먹고 버스타고 가다 남대문에 내렸다가

 

버스타고 집에간다는 생각이

 

갑자기 바뀌어서 서울시청 청계천 근처를 돌아

 

다녔는데 이번에 청계천 Luci-Festa  때문에 밤에 볼것이 많더군요.

 

이것저것 찍어본것중 형체를 알아볼수있게 나온거 몇장 올려봅니다^^;;

 

 자세한건 모르겠지만 은하수라고 해야 하나? 그런게 컨셉인거 같더군요..

 

 

낮에 볼땐 모르겠지만 밤에 저렇게 떠있는것을 보니 재밌더군요^^

 

 

한국역사상최고액이라는 35억원짜리 왕다슬기는 저거자체만 보면 꽤 큰데 같이 보다보면

 

아무래도

 

옆에 동아일보건물때문에 좀 초라하게 보였습니다.

 

 

저번에 청계천 사진 올릴때 뭐지 했던 구조물이.. 이렇게 빛이 나니까 달라보이더군요

 

 

가까기 가서 보니 계속 조명색깔이 바뀌는게 볼만했습니다

 

 

길양쪽에는 빛나는 망사라고 해야하나? 그런식의 조형물들이 많았습니다. 그중에 제가보기에 인상적이던거..^^;

 

 

잠시 목말라서 밖으로 나갈때..

 

 

길거리에서 팔던 인형들..ㅋ

 

안에서 볼때랑 밖에서 볼때랑 뭔가 달라보이더군요

 

 

 

 

이렇게 보니 왠지 ufo가 내려오다 만것처럼 보이더군요

 

 

제 똑딱이에 있는 사진3장이어붙이기 기능을 사용해본거.. 뭐 눈으로 볼때랑 약간은 다릅니다^^;;

 

 

 

이것도 역시 2,3장 이어붙이기 해본거..^^; 약간 왜곡은 있지만..암튼 이랬습니다.

 

 

 

 

평소보다 빠른 8시에 퇴근하니 갈곳이 애매해서

 

모처럼 시간나서 한강야경이나 보고싶어 걷다보니 저쪽에서 뭘 하는지 시끌시끌하길래 가보니

 

서울페스티벌하고 있어서 보다가

 

근처에서 지하철이나 버스타는 곳을 못찾아 원효대교쪽으로 해서 건너가고 있었는데

 

불꽃놀이를 시작하는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내가 애지중지하는

 

자동디카인 v570를 꺼내찍어봤지만,,ㅜ.ㅜ

 

손각대라 많이 흔들리고 좀 그렇지만

 

그래도 형체를 알아볼수있는거 몇개 올린거..ㅋ

 

 

 

 

 

 

 

 

 

 

 

 

 

 

 

 

 

 

 

 

 

 

 

 

 

 

 

 

 

평소보다 빠른 8시에 퇴근하니 갈곳이 애매해서

 

모처럼 시간나서 한강야경이나 보고싶어 걷다보니 저쪽에서 뭘 하는지 시끌시끌하길래 가보니

 

서울페스티벌하고 있어서 보다가

 

근처에서 지하철이나 버스타는 곳을 못찾아 원효대교쪽으로 해서 건너가고 있었는데

 

불꽃놀이를 시작하는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내가 애지중지하는

 

자동디카인 v570를 꺼내찍어봤지만,,ㅜ.ㅜ

 

손각대라 많이 흔들리고 좀 그렇지만

 

그래도 형체를 알아볼수있는거 몇개 올린거..ㅋ

 

 

 

 

 

 

 

 

 

 

 

 

 

 

 

 

 

 

 

 

 

 

 

 

 

 

 

이번에 수십년전에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넘이 미국인들 30여명을 죽여 말이 많습니다

 

좀 예전이긴 하지만..47년전 대한민국은 저런 일개미치광이가 아닌

 

정부차원에서 수백명의 민간인들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미치광이 정부를 타도한 47년째 되는 날인데

 

너무 예전이야기인지 언론에서도 별로 다루질 않는군요.

 

암튼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 입버릇처럼 애기하던 독실한 교회 장로이자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기도 했던 이승만이 지배하던 46년전 대한민국의 1960년 4.19일 화요일.

1960년 4.19일 그날은 지금와선 피의 화요일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47년전 그날 한국에선 이승만정권의 무차별적인 학살로 인해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행사하며 반민주반자유부정부패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던  시민과 학생들이 서울에서만 104명 부산, 광주에선 27명이 이승만정권에 총살당했습니다.

전국적으로 계산하면 노동자 61명, 고등학생 36명, 무직자 33명, 대학생 22명, 국민학생·중학생 19명,기타 15명으로 총 186명이 실탄발포에 아까운 생명을 잃고 6026명이 부상을 당해 흐르는 끔찍한 피가 펑펑흐르던 날입니다.

결국 그래도 이승만이 계속 정권을 해먹겠다구 버티자 6일후인 4.25일 27개대학 258명의 교수님들이 이승만은 물러가라며 14개항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그후 400명의 대학교수님들이

4.19의거로 쓰러진 학생의 피에 보답하자면서

'이 대통령은 즉시 물러가라', '부정 선거 다시 하라', '살인귀 처단하라'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위를 감행 서울시가를 행진하기 시작했습니다.

4.25 교수단 데모는 전국민적인 지지를 받아 다시 연이어 시민들과 학생들이 연이어 궐기하기 시작하자 4.26 10시 이승만은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을 사임한다고 하야성명을 발표 한후

 

환호하는 시민들이 파고다 공원에 있던 이승만의 동상 목에 줄을 걸고 끌고 다니는 가운데

 

결국 12년간 잔인한 철권독재를 휘두르던 독재자 이승만은 대한민국 국민의 민주혁명으로 4.28에 경무대를 떠나 이화장으로 갔다가

 

1960년 5월 29일 부인과 같이 몰래 미국의 하와이로 도망가 결국은 조국으로 못 돌아오고 해외에서 죽었습니다.

다음은 이러한 시대 47년전 4.19 오늘 이승만정권의 총에 맞은 죽은 15살 한 여중생의 유서입니다. 지금 기준으로 봐서도 너무나도 그당시의 상황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진영숙양(15세, 당시 한성여중 2년)의 유서>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 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와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 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어머니,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윌들이 아니면 누구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잘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가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닌,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 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상 이만 그치겠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인 진영숙 양은 19일 오후 4시 학교를 파한 후 시위에 나가기에 앞서 홀몸인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일단 집에 갔다가 시장에 장사하러 나간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자 편지를 써놓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그녀는 성북 경찰서 앞에서 버스 차창 밖으로 머리를 내민 채 구호를 외치다가

경찰에 총살 당했습니다.

 갠적으로 이 어린 소녀의 이 유서를 보면 그당시 목숨걸고 이승만의 퇴진을 요구하다 돌아가시거나 다치신 분들의 생각 이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낄수가 있겠더군요.

 근래 들어 어떤 반민주 비민주적인 신문사에선 이승만을 다시본다며 미화를 하고 있지만 이 4.19 시기에 진영숙 양과 같은 수많은 이름을 알수 없는 조국의 미래를 위해 힘쓰다가 돌아 가신분들이 계시길래 오늘날 우리들이 예전에는 못누리던 엄청난 자유를 느낄수 있는 현실에서 

 

 그분들의 희생과 피위에 세워진 대한민국에서 역사를 거꾸로 할려는 무리들을 보면서 얼마나 분노를 느끼실지 못난 후손들에게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지를 생각하면 이분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밖에 가질수가 없습니다.

ps

이승만이 쫗겨나는 계기가 되었던 3.15부정선거 와 대학 교수단 시국 선언문관련 글과 사진입니다.

3·15 부정 선거 지시 비밀 지령

가. 4할 사전 투표 : 투표 당일 자연 기권표와 선거인 명부에 허위 기재한 유령 유권자표, 금전으로 매수하여 기권하게 만든 기권표 등을 그 지역 유권자의 4할 정도씩 만들어, 투표 시작 전에 자유당 후보에게 기표하여 투표함에 미리 넣도록 할 것

나. 3인조 또는 5인조 공개 투표 : 자유당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미리 공작한 유권자로 하여금 3인조 또는 5인조의 팀을 편성시켜, 그 조장이 조원의 기표 상황을 확인한 후 다시 각 조원이 기표한 투표 용지를 자유당측 선거운동원에게 제시하고 투표함에 넣도록 할 것

다. 완장부대 활용 : 자유당측 유권자에게 '자유당'이란 완장을 착용시켜 투표소 부근 분위기를 자유당 일색으로 만들어 야당 성향의 유권자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주어 자유당에게 투표케 할 것

라. 야당 참관인 축출 : 민주당측 참관인을 매수하여 참관을 포기시키거나 여의치 않을 때는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 투표소 밖으로 축출할 것

(『동아일보』, 1960년 3월 4일)


대학 교수단 시국 선언문(1960. 4. 25)

이번 4·19 참사는 우리 학생 운동 사상 최대의 비극이요, 이 나라의 정치적 위길르 극복하기 위한 중대 사태이다. 이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규정(糾正)이 없이는 이 민족의 불행한 운명을 도저히 만회할 길이 없다. 우리 전국 대학교 교수들은 이 비상 시국에 대처하여 양심의 호소로서 다음과 같이 우리의 소신을 선언한다. …

'이 대통령은 즉시 물러가라', '부정 선거 다시 하라', '살인귀 처단하라'

(『동아일보』1960. 4. 26)

 

 

다음사진은 1960년 4월 12일자 부산일보 조간 1면에 나온




부정선거에 항의하다 행방불명되었다가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상태로
마산 앞바다 에서 시체로 떠올라 발견된 마산상고생 김주열의 시체로

4.19혁명의 불을 당긴 경상남도 마산 시민의거의 도화선이 된 사진입니다.


 위 글과 사진만 보더라도 이당시 이승만정권의 폭정이 어떠 했는지
왜 어린 여중생이 저런 일기를 쓰고 혁명에 가담했어야만 했는지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암튼 저때 피흘리며 돌아가신 수많은 분들..

 

그분들이 보시기에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은 그분들이 피를 흘리며 죽을 값어치가

 

있었던 모습이었는지.. 아닌지..

 

하는 생각이 좀 듭니다...

 

암튼 오늘 하루...

 

 

다른 더 볼만한 많은 뉴스들이 있지만..

 

그래도 47년전에 누군가 우리들과 동갑이거나 연상이거나 아님

 

훨어린 애들이 오늘날 우리들이 누리는 자유를 얻기 위해 피흘러 죽었다는 사실을

 

 

(당시 이승만정권이 사람을 너무 많이 총살하는  상황에서 국민학생 애들도 부모님 형,누나를 그만죽이세요 라며 시위에 나섰었죠..)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ps

 

 저 사진은 수십마디 글보다 47년전 오늘을 더 확실히 느낄수 있게 해줄수 있다는

많은 생각을 한끝에 올렸습니다.  보기에 좀 심장이 떨리거나 역겨운 사진이라는 둥의

지적이 나온다면 그때는 링크로 바꾸겠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