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여직원 한분이 프린트 한그림을

 

제 노트북의 웹켐으로 보면 웬 귀여운 눈3개달린 생물체가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손발을 움직이고 있더군요..ㅋ

 

재밌길래 올려봅니다.^^

쿠테타군에 의해 수백명이 총살당한곳에서

 

30년 동안 5.18 추모곡으로 불려왔고,

지난 2004년부터는 정부의 공식 5.18기념식에서 제창됐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이번

5.18 30주년 기념식에서 정부가 못부르게

하고 대신 <방아타령> 이라는 노래로 바꿔버렸는데 그 가사가

 

"노자 좋구나 오초동남 너른 물에 오고가는 상고선은

순풍에 돛을 달고 북을 두리둥실 울리면서 어기여차 닻감는 소리

원포귀범이 에헤라이 아니란 말인가

에헤에헤~ 에헤야~ 어라 우겨라 방아로구나

반 넘어 늙었으니 다시 젊기는 꽃잎이 앵도라졌다..."

 

~~ 보통 좋은날에 쓰는 음악이라 그런지 가사가 영 안어울린다는 생각드네요..

 테두리에 계란을 계속 무한 리필해주는게 인상적이었구

 

고기맛도 가격도 무난해서 좋았다..^^

 










4년전에 교보생명꼭대기서 퇴직연금 수탁 관련플젝하고있을때 인지

 

교보문고 e디지토리 플젝할때인지 헛갈리지만 암튼 그쪽서

 

플젝할때..

 

바로 앞에선 한창 스크린쿼터축소반대 1인시위할때였습니다.

 

당시 점심먹고왔다갔다할때

 

잠시 일하다 쉬러나올때

 

운좋게 몇개 지근거리에서 찍었던것들중 일부입니다.

  

바로 지근거리에서 연예인 봤을때...라고 보심 될듯..^^;;;

 

갠적으론 이때가 아닌 다른곳에서..

 

사진은 못찍었지만 하지원이나 이나영이 가장 광채가 났던 거 같습니다.

 

1.

 

장동건엉아 밖에 있다가 밀려드는 인파때문에 안으로 피신했을때 저도 22층갈려면 엘리베이터 타고가야해서 서있었는데

 

마침 제옆을 지나가길래

 

바로찍었었죠..

 

 

 

 

 

 

2.

 

 

한창열변을 토하는데 

 

어떤애들이 얼굴이 작아서 사진찌기 힘들다고 하니까

 

계속 굳은 얼굴로 애기하고 있다가 잠시 웃을때의 모습입니다..^^;

 

질문하는 기자들이나 시민들에게 상당히 조리있게 논리적으로 애길 잘했었죠.

 

지적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3.김혜수누나

 

 

4.강성연

 

 

 

 

 

5.문소리누나..

 

 

 

 

ps

 

 

이건 같이사진찍으러 다녔던 동료가 1인시위전 소규모집회때 찍은 사진인데

 

일종의 숨은그림찾기입니다. 그냥 이름을알거나 안면있는 연예인들 몇몇나오죠..^^;

 

 

ps

 

김혜수누나가 잠시 휴식시간때 사람들하고 같이 사진찍어주는 시간가질때 운좋게 찍어본거^^;;;

 

 

50년전 오늘 대한민국정부는  

 

정부차원에서 수백명의 민간인들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미치광이들의 정부를 타도한지 50년째 되는 날인데

 

너무 예전이야기인지 천암함 사건때문인지 언론에서도 별로 다루질 않는군요.

 

 

오히려 친일파와 매국노들의 뛰어난 처세술을 찬양하고 그들을 근대화의 선구자 운운하는

 

괴상한 학설이 교과서에 실리며 이승만을 국부라며 그가 저지른 모든죄악을 모른척눈감고 오히려

 

조그만 장점이라도 찾아 침소봉대하는 웃기는 현실이 되었죠.

 

 

암튼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

 

입버릇처럼 애기하던 독실한 교회 장로이자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기도 했던

 

이승만이 지배하던 50년전 대한민국의 1960년 4.19일 화요일.

1960년 4.19일 그날은 지금와선 피의 화요일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50년전 그날 한국에선 이승만정권의 불법부당선거에 항의하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행사해 반민주반자유부정부패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던  

국민들에게

 

이승만정권은 실탄발사라는

무차별적인 학살로 인해

 

시민과 학생들이 서울에서만 104명 부산, 광주에선 27명이 이승만정권에 총살당했습니다.

전국적으로 계산하면 노동자 61명, 고등학생 36명, 무직자 33명, 대학생 22명, 국민학생·중학생 19명,기타 15명으로 총 186명이

 

이승만정부의 실탄발포에 아까운 생명을 잃고 6026명이 부상을 당해 끔찍한 피가 펑펑흐르던 날입니다.

결국 그래도 이승만이 계속 정권을 해먹겠다구 버티자

 

6일후인 4.25일 27개대학 258명의 교수님들이 이승만은 물러가라며 14개항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그후 400명의 대학교수님들이

4.19의거로 쓰러진 학생의 피에 보답하자면서

'이 대통령은 즉시 물러가라', '부정 선거 다시 하라', '살인귀 처단하라'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위를 감행 서울시가를 행진하기 시작했습니다.

4.25 교수단 데모는 전국민적인 지지를 받아 다시 연이어 시민들과 학생들이 연이어 궐기하기 시작하고

 

이에 동북아의 미국 꼬봉 이승만을 지켜주던

 

주인국 미국 정부마저 이승만에게 하야하라고 하자

 

끝까지 버티던 이승만은 결국 4.26 10시에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을 사임한다고

 

하야성명을 발표 한후

 

환호하는 시민들이 파고다 공원에 있던 이승만의 동상 목에 줄을 걸고 끌고 다니는 가운데 (요즘 조선일보같은 찌라시들은

 

국부의 동상이 없는 건 이상하다고 개소리 찍찍거리고있죠. 어느 나라든 국민의적이었던 지도자의 동상은 없게마련이거늘..

 

통일후에 노동당이 정권잡으면아부하기 위해 북조선국부의 동상을 세우자고 할 쓰레기들..ㅡㅡ)

 

 

 결국 12년간 잔인한 피의 철권독재를 휘두르던 독재자 이승만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민주혁명에 의해 쫓겨나 4.28에 경무대를 떠나 이화장으로 갔다가

 

1960년 5월 29일 부인과 같이 국민들 몰래 미국의 하와이로 도망가 살다가

 

결국은 대한민국 으로 못 돌아오고 해외에서 뒤졌습니다.


다음은 이러한 시대 50년전 4.19 오늘 이승만정권의 총에 맞은 죽은 15살 한 여중생의 유서입니다.

 

지금 기준으로 봐서도 너무나도 그당시의 상황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진영숙양(15세, 당시 한성여중 2년)의 유서>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 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와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 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어머니,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윌들이 아니면 누구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잘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가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닌,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 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상 이만 그치겠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인 진영숙 양은 19일 오후 4시 학교를 파한 후 시위에 나가기에 앞서 홀몸인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일단 집에 갔다가 시장에 장사하러 나간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자 편지를 써놓고 거리로 나섰다가 

 성북 경찰서 앞으로 이동하던 버스 에서 구호를 외치다가

 (마치 월드컵때 울나라 팀이 이겼을때 걸거리에서  버스안에서도 대한민국!! 하며 했던 것처럼...)

 

버스안에까지 실탄 사격을 하던 경찰에 의해 총살 당했습니다.

 갠적으로 이 어린 소녀의 이 유서를 보면 100%는 아니더라도

 

그당시 목숨걸고 이승만의 퇴진을 요구하다 돌아가시거나 다치신 분들의 생각 이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낄수가 있겠더군요.

 근래 들어  반민주 비민주언론사들인 조중동같은 곳에서는 이승만을 다시본다며 미화를 하고 있지만 이 4.19 시기에 조국의 미래를 위해 힘쓰다가  진영숙 양과 같은 수많은 이름을 알수 없는 돌아 가신분들이 계시길래 오늘날 우리들이 예전에는 못누리던 엄청난 자유를 느낄수 있는 현실에서 

 

 그분들의 희생과 붉은 피위에 세워진 대한민국에서 역사를 거꾸로 할려는 무리들을 보면서 얼마나 분노를 느끼실지 못난 후손들에게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지를 생각하면 이분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밖에 가질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히도 지금 정치권에서 어느당이라도 419혁명에 대해 현재 대한민국을 이룩한 것으로 좋게 평가하는 것에 대해

심지어 현 대통령마저 4.19는 성공한 혁명이라고 하는판이니

위안을 삼을뿐입니다..


 

ps

이승만이 쫓겨나는 계기가 되었던 3.15부정선거 와 대학 교수단 시국 선언문관련 글과 사진입니다.

3·15 부정 선거 지시 비밀 지령

가. 4할 사전 투표 : 투표 당일 자연 기권표와 선거인 명부에 허위 기재한 유령 유권자표, 금전으로 매수하여 기권하게 만든 기권표 등을 그 지역 유권자의 4할 정도씩 만들어, 투표 시작 전에 자유당 후보에게 기표하여 투표함에 미리 넣도록 할 것

나. 3인조 또는 5인조 공개 투표 : 자유당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미리 공작한 유권자로 하여금 3인조 또는 5인조의 팀을 편성시켜, 그 조장이 조원의 기표 상황을 확인한 후 다시 각 조원이 기표한 투표 용지를 자유당측 선거운동원에게 제시하고 투표함에 넣도록 할 것

다. 완장부대 활용 : 자유당측 유권자에게 '자유당'이란 완장을 착용시켜 투표소 부근 분위기를 자유당 일색으로 만들어 야당 성향의 유권자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주어 자유당에게 투표케 할 것

라. 야당 참관인 축출 : 민주당측 참관인을 매수하여 참관을 포기시키거나 여의치 않을 때는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 투표소 밖으로 축출할 것

(『동아일보』, 1960년 3월 4일)


대학 교수단 시국 선언문(1960. 4. 25)

이번 4·19 참사는 우리 학생 운동 사상 최대의 비극이요, 이 나라의 정치적 위길르 극복하기 위한 중대 사태이다. 이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규정(糾正)이 없이는 이 민족의 불행한 운명을 도저히 만회할 길이 없다. 우리 전국 대학교 교수들은 이 비상 시국에 대처하여 양심의 호소로서 다음과 같이 우리의 소신을 선언한다. …

'이 대통령은 즉시 물러가라', '부정 선거 다시 하라', '살인귀 처단하라'

(『동아일보』1960. 4. 26)

 

 

다음사진은 1960년 4월 12일자 부산일보 조간 1면에 나온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다 행방불명되었다가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상태로
마산 앞바다 에서 시체로 떠올라 발견된 마산상고생 김주열의 시체로

4.19혁명의 불을 당긴 경상남도 마산 시민의거의 도화선이 된 사진입니다.


 위 글과 사진만 보더라도 이당시 이승만정권의 폭정이 어떠 했는지
왜 어린 여중생이 저런 일기를 쓰고 혁명에 가담했어야만 했는지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암튼 저때 피흘리며 돌아가신 수많은 분들..

 

그분들이 보시기에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은 그분들이 피를 흘리며 죽을 값어치가

 

있었던 모습이었는지.. 아닌지..

 

하는 생각이 좀 듭니다...

 

저분들이 타도했던 살인귀를 국부랍시며

 

찬양미화하는 반민주세력들이 광분하는 이때에

 

저때 돌아가신 분들이 중상을 입고 어떻게든 살아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60살전후일텐데..살아계셨다면

 

지금 한국의 모습을 어떻게 보실지..

 

암튼 오늘 하루...

 

다른 더 볼만한 많은 뉴스들이 있지만..

 

그래도 50년전에 누군가 우리들과 동갑이거나 연상이거나 아님

 

훨씬 어린 애들이 오늘날 우리들이 누리는 자유를 얻기 위해 피흘러 죽었다는 사실을

 

(당시 이승만정권이 사람을 너무 많이 총살하는  상황에서 국민학생 애들도

부모님 형,누나를 그만죽이세요 라며 시위에 나섰었습니다. 그래서 역시 많이 총맞아 죽었죠...)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2년전 여의도서 플젝할때 3월말에서 4월초사이 점심시간에

 

밥먹고 산보할때 찍어봤던겁니다.

 

장소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앞쪽부터 국회 근처입니당^^;

 

 

저런건 좀 탐스럽다고 해야 하나? 한번 손으로 잡아보고싶더군요^^;

 

 

 

 

 

 

 

보면 벚꽃축제가 아닌 봄꽃축제라고 적혀있더군요^^;

 

 

저당시엔  순복음교회앞족이 가장 잘핀거 같아 보였습니다

 

 

 

 

 

이상벚꽃들 사진입니당^^;

 

다음것들은 이런저런 꽃들..

 

 

 

 

 

 

 

 

 

 

 

이때만 해도 3월말에서 4월초면 날씨도좋구 꽃도 잘피었는데

 

금년은 내일은 영하.. 이번주도 꽃셈추위어짜구 하니..이러다 동남아의 건기우기처럼

 

한국도 동기,하기로 구분되는건아닌가? 하는생각이..ㅋ.

요즘 재밌게 보는 한국드라마 있습니다.

 

추노라는 작품인데

 

이걸보다보면 생각나는게 이작품을 만드신분이 3년전에 만드신 한성별곡이라는 작품이 생각납니다.

 

커피프린스에 밀려 시청율은 영 아니었지만..

 


원래 사극을 좋아했던터라 아무래도 노무현정부이후 언론계나 학계에서 잘 안다루는

정조시대를 배경으로 해서 그런지 매우 재밌게 볼수 있었습니다.


8부작으로 방송했었는데  요즘 방송하는 추노에 나오는 상당수의 인물들이 이작품에서도 나왔었죠

 


대충 한성별곡이란 드라마의 시대상황을 정리하면

인조반정이후 조선을 장악한 서인들이 노론 소론으로 갈라지면서

노론중 왕권을 우습게 여기고 신권을 강조하는 강경 벽파가  조선을 장악하고 있는 시점입니다.



노론은 지금으로 치면 신권주의..즉 왕은 양반들중의 하나..이러는쪽이고

반대로 소론과 인조반정이후 쏵 사라진 동인계열의 남인들은 왕권중심주의 자들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불멸의 이순신에서 그렇게 이순신을 모함하고 죽일려던 세력들이 서인입니다

반대로 전쟁이 안난다고 상황판단은 잘못했지만 전쟁당시 열심히 조선을 위해 싸웠던 이순신,곽재우등등의 수많은 의병장들은

동인특히 이중 북인계열입니다.

그래서 광해군 이후 권력자리에서 밀려난 서인들이 인조반정을 일으켜 현명한 군주였던 광해군과 북인들을 쏵죽이고

관제야당으로 남인들만 살려주었죠)


노론의 힘은 막강해서 노론에 의해 차기 왕으로 선택된후

남인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에게

생강과 게장을 먹여 죽였다는 의심을 받는 영조시대에

(영조를 왕으로 안여기는 소론남인중에

영조앞에서 경종이 죽은후 생감과 게장을 안먹는다..이럼 분노한 영조에 바로 사형이었습니다.)


영조가 탕평책를 하는 와중에서도 세력을 키워

영조시절 15살때부터 대리청정을 하던 사도세자가

노론이 아닌 소론,남인계열편을 든다고 영조를 압박해 죽이기 까지 하죠

 
이때 노론의 거두인 홍씨집안출신인 사도세자의 아내인 혜경궁홍씨도

집안과 노론에서 자기 남편을 죽이는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합니다.


사도제사가 갖혀죽은 뒤주도 장인이 영조에게 알려준거고 사위가 죽을때 뱃놀이하고 놀고있었죠.

그래서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왕이 될려할때 외할아버지 집안인 혜경궁홍씨가문은 죽어라 반대를 하죠

남편죽이는거 까진 양보했던 혜경궁 홍씨는 아들만큼은 지킬려고 노력하구요.

더불러 나이 15살에 대비가된 50살차이나는 영조의 아내가 된 정순왕비집안도

양자를 맞거나 아들을 출산하면 왕이될수있다는 확신아래 사도세자죽이는데 이바지했었기에 왕되는 것을 반대하고

사도세자의 아들들을 다 죽일려는 음모를 꾸몄죠

 

(이것은 정조죽은후 정순대비가 조선을 결딴낸후 죽은후에 밝혀져 김씨집안과 강경벽파들이 다 망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러저러한 힘든과정을 거쳐 왕이된 정조...

정조가 왕이되자 마자 외가쪽에선 무사들 수십명을 보내 궁궐담을 넘어 정조를 3번이나

죽일려고 발악합니다.


그래서 결국 사랑하는 어머님 혜경궁홍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외삼촌 외할아버지등등이 정조를 죽일려고 대궐에 무사들까지 보내는 판이니 결국 다 역모로 죽일수밖에 없게되죠(이부분은 드라마

 

이산에서도 오버하긴 했지만 잘 묘사되었었죠)


그러는 와중에 정순대비는 대비란 직위를 이용해서 툭하면 정조 근처의 신하들이나 내관들 시녀들을 매수해서 정조를 엿먹일려고

노력하고 역사상으로도 사도세자의 아들들..정조와 배다른 형제들을 죽일려고 발악을 하죠


사도세자죽이는데 앞장선 노론특히 그중 벽파들은 아주 노골적으로 정조를 왕으로 여기지 않고 덤빕니다



(정조역으로 나오는 안내상님.. pd말로는 이드라마에서 정조역은 별볼일없는거라고 애기하셨는데

실제론 보다보면 엄청 비중있습니다. 게다가 연기도 무지잘하시구요.

허나 당쟁은 줄지 않고 백성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신료들도 백성들도 나를 탓하기 바쁘다.

나의 간절한 소망을 따랐다는 이유로 소중한 인재들은 죽어나가고...

내가 꿈꾸는 새로운 조선은 저만치서 다가오지 않는다.


나의 신념이 현실에 조롱당하고, 나의 꿈이 안타까운 희생을 키우는데... 포기하지 않는 나는 과연 옳은 것이냐...

너라면 어찌하겠느냐...


라고 할때..당시 드라마방송시점의 현실과 많이 오버랩되더군요
)

 

[개인적으로 요즘 안내상님은 뭐랄까 약간 오버하는 바람둥이 웃기는 케릭터로 많이 나오시지만

전 이드라마에서의 안내상님만을 기억하는 중입니다.^^;]



그들은 수도한양의 군사력과 상권을 거머지고 있어서 왕보다도 힘이셌죠

그래서 정조는 아버지를 기린다는 핑계로 수원화성에 신하들이 아닌 자기에게만 복종하는 친위부대를 만들어 군사력쪽의 개혁과

수원으로의 천도를 준비하고

상권을 독점하고 백성들에게 폐를 끼치는 상인들과 노론신하들의 힘을 줄이기 위해 금난전권폐지등 상업관련 개혁들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상놈들만 지던 군역의 의무를 양반에게도 매기면서 주류와 기득권세력이 정조에게 강하게 반발하던

조선의 마지막불꽃 개혁군주 정조시대말기가 드라마의 배경입니다.



헥헥..대충 드라마 배경시기 적는데 글이 길어졌네요,....^^;;;;;;;;


(이건 당시 한성별곡 드라마속의 현실과 실제 현실을 비교했던 영상)

 


암튼 한성별곡은 이쯤이 시작입니다.


과거 역모에 얽혀 아버지가 돌아가고

집안이 망한 나영이라는 여자는



(아버지덕에 신문물을 많이 접한 개명한 여성이었습니다.

집안의 종놈들에게 글도 가르치고





좋아하는 남자와 자유연예도 하고











했었지만...)


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려죽고

 

어머니와 같이 관노가 되어 엄청난 고생을 합니다.

그와중에 어머니도 돌아가지고 본인도 관노라

여기저기서 양반들이나 남자들에게 강간당하는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죠






처음에는 은장도로  자신을 지켜보겠다고 노력하지만 결국 난중엔 하도 당하다 보니

이제 무감각해집니다.





그러다가 살인으로 국가에 보답한다는 노론벽파계열의 살인집단에 들어가게 됩니다.

주로 의술...침과 약으로 사람을 죽이는 킬러로 단련된 나영이는



정조의 최측근으로 수도이전을 강하게 추진하던 시파계열의

 

이조판서를 기생으로 변장하여

약으로 죽이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현재는 저 살인집단에서 과거기록을 조작해서 왕에게 약을 바치는 궁녀역을 수행하게 해서



대비의 눈에 든후

왕옆에서 시중드는 역활도 하게되죠

 

왕이잘먹는 것과 비슷하게 생긴 독약을 이용해서 나영이가 민간에서

자행한 대량살인덕에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왕을 죽일려고 했죠



드라마상에서 대비의 명을 받아 정조를 죽일려고 하죠

( 당시 한성별곡 이부분 대본 :

 

임  금 : 이곳은 내 생부께서 태어나신 곳. 어린 시절 생부의 복수를 다짐하며 수도 없이 찾았던 곳이다.

이나영 : (천으로 고름을 천천히 닦아낸다)

임  금 : 굳이 이곳에서 치료 받겠다 고집한 이유는... 새 생명이 태어나듯... 새로운 조선을 이끌 강건한 힘을 되찾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이나영 : (대야에 헹군다)

임  금 : 아귀처럼 이 복마전에서 살아남으려는 이유는, 고통 받는 이 땅의 백성들을 위해 새로운 조선을 만들겠다는 간절한 소망 때문이다.

이나영 : (우뚝 멈춰서는 손)

임  금 : 나의 간절한 소망은 그 누구보다 강하고 단단하다. 때문에 그 누구도 나를 죽일 수 없다.

이나영 : (임금의 등을 쏘아보며 떨리는 눈동자)


갠적으로 tv에서 이부분을 보면서 나의 간절한 소망은 그 누구보다 강하고 단단하다. 때문에 그 누구도 나를 죽일 수 없다. 
라고 말하는 부분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왕도 대충 나영의정체를 눈치채고 있는 가운데 하는 말인데
안내상님은 마치 정조가 다시 환생한것처럼 느껴지더군요^^;
)



그전에



왕이 수도이전과 육의전의 독점권폐지에 항의하는 백성들과 직접 자리를 마주하고 애기하는 자리에서

노론벽파쪽에서 보낸 자객이 왕을 죽일려고 할때 나영의 전 연인이자 남자 주인공중 하나가 대신 자객의 칼을 맞고

죽을려고 할때 그를 간신히 살려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가 그녀가 장안의 수많은 사람을 죽였던 킬러라는것을 알아채고

결국 조직에서 그사실을 알고있는 그를 죽이라고 할때



죽이러 왔다고 사실대로 말하고


조용히 죽이겠다고 하죠..



이넘은 죽어가면서도 독살당했다는 것을 인정안하고

자기가 술이과해 몸이 불편한것일뿐이라며

절대로 여자책임이 아니라구 하죠

 

머 나름 사랑의 방식인듯..



일말의 가책은 있는지 눈물을 흘리더군요..

제가 주로 여자주인공 나영의 입장에서 글을썼지만

나영말고도 많은 개성굵직한 역들이 많이 나옵니다

(나영이가 암살자가 되기전에 자주쓰던  소망하지 않는다면 어찌 이루겠는가.. 가는 요즘 제 대화명이죠^^;
드라마상에선 이말 덕에 건달이 포졸이 되었고 종놈이 잘나가는 상인이 되었는데 진작 이말을 사용했던
나영이는 세상이 내가알던세상이 아니더군요....라면서 변했지만..)




종이었다가 역관일을 하다 육의전 시전 상인들 총행수가 된 양만오

총행수가된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고맙습니다. 미력한 저에게 시전 전체의 총행수라는 중책을 맡겨주신 여러 행수어르신,
기꺼이 주인권을 양도해주신 여러 객주 어르신, 그리고 저와 함께 앞으로 조선팔도를 휘어잡을 상인여러분, 반갑습니다.


사농공상이라 우리는 가장 천대받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그리 만들었습니다!

하루 벌어먹기에 급급해 민초들에게 부정을 일삼고 폭리를 취해 온 우리 장사치들에게, 그런 대접은 당연합니다... 허나 이제! 달라져야 합니다.

가진 자들에게 비싸게 팔고, 그 이문으로 민초들에게는 싸게 팔 것입니다. 하여 조선의 민초들은 굶주림의 고통을 덜 것이며,
그 잘난 양반 사대부들보다 우리 상인을 더 믿고 따를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이땅에 나고 자랄 우리 후손을 위함입니다.
천하게 태어나 천대받고 살았다하여 언제까지 그리 살 순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풍족하게 할 것이며!
우리는! 스스로를 대접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그 잘난 양반 사대부 부러울 게 무업니까?
그리할 때! 우리가 그들보다 못할 게 무업니까?


우리와 우리를 믿고 의지할 민초들이 풍요롭고 행복한 것이! 바로 이나라 조선이 풍요롭고 행복한 것입니다!

그것은 나랏님과 양반네들이 가진 총과 칼이 아니라! 바로 나 양만오와 여러분이 가진 돈의 힘으로만 만들 수 있습니다!

돈이 만드는 새로운 세상! 우리 상인이 만드는 새로운 세상! 언젠가 반드시 옵니다, 여러분!

 

라고 말하는 부분 어떻게 보면 감동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드마라상에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현기득권세력인 노론벽파와 야합하여

그들에게 뒷돈을 대주고 보호를 받으며 정조가 행하는 여러개혁들을 방해하고 반대하는 입장에 서있습니다.

그래서 왕의정책을 파탄내기 위해 자기편을 들어준 사람들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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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만오 : 점방 문을 이틀에 하루씩, 한 집 걸러 한 집씩 열고, 내놓는 물건의 수량도 반으로 줄이라 이르십시오.

공행수 : 그럼 장사를 안 하는 만큼 손해 보는 건 어쩌나?


양만오 : 물건이 딸려 아우성치는 만큼 담합한 가격을 차차 올리면, 소량을 팔아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습니다.

공행수 : 관아에서 가만히 있을까? 가뜩이나 분위기도 안 좋은데?


양만오 : 어차피 난전배들에게 장사를 허락했으니 시전이 장사를 쉰다고 뭐라 하진 못할 것입니다.

박행수 : 그게... 양반들 골탕 먹이는 건 좋은데, 덩달아 평민들까지 피해를 입게 되질 않나?


양만오 : (갈등하지만) 당분간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박행수 : 아니, 상인의 힘으로 민초들의 세상을 열자는 양행수께서 그리 말을 하다니, 가당키나 한가?
폭리를 취해 백성들 등골 빼먹는 파렴치한 장삿꾼을 몰아내야 한다 뜻을 모은 우리 아닌가? 

공행수 : 그렇지! 당장 올라간 쌀값을 감당 못해 굶는 이가 나올 것이 뻔하네, 그럼... 이를 어쩌나?

양만오 : (더 힘주어) 서둘러야 합니다. 도성내 모든 시전에 이르십시오.


박행수, 공행수 마지못해 끄덕이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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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랬었죠.

나영이를 킬러로 키운 황집사나 기생이나 첨에 죽은 이판등등 여러 수많은 각자사연을 가진 인물들..

드라마가 8부작인게 넘 아까울정도로 선굵은 인물들이 많이 나옵니다

사전제작된 8부작이라 시청율이 안좋았던게 넘 아까울 따름이나는...ㅠ.ㅜ


암튼 초노보다가 시간나실때 8부작이니 짧은 시간 집중해서 보기편하니

추천드립니다.^^;;;;;;;;;


ps

 

저드라마의 OST입니다. 한때 노래방에서 열심히 불러볼라구했는데 잘안되었던 노래..ㅋ

 

 

 


 

 집에서 올만에 청소를 하다보니 예전 신문이 보게되었다.

 

내용을 보니 감회가 새로운..

 

 

요즘처럼 큰집운운 하는 청와대가 한나라당을 꼭두각시처럼 부리고 각계각층을 꼭두각시로 부리는 현실에서

 

집권 2,3년만에 국가경제를  파난내고 대한민국국격을 떨어뜨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더 살기 힘들게 만들며 대북불안으로 대한민국을 위험에떨게하는 아마추어 정부를 향해

 

 

민주당은 청와대를 향해 몇년전 한나라당이 했던거처럼

 

민주당 정대표의 발언은 이대통령을 위한 는 마음에서 나온 충언

 

을 해야할 시기가 아닌가??

 

몇년전 주말에 뒹굴뒹굴하다가 갑자기 눈이많이와서

 

올만에 남산이나 구경해볼까 해서  가봤었습니다.

 

 

그뒤로 눈올때 남산은 가본적이 없습니다.

 

그당시 풍경인데

 

아마 오늘처럼 눈많이온날 남산가면 비슷한 풍경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드네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은 눈이 다 치워져 있었는데 그렇지 않는 쪽은 눈이 쌓여 있더군요.

 

 

나무들은 완전히 눈꽃처럼 보였죠..

 

 

 

그냥 나무들을 볼때도 좋았지만 눈덮힌 모습은

 

더 보기 좋았었습니다.

 

 

서울타워가기전에 중간에 서울이 보이는 곳에서 바라본 경치입니다.

 

요즘은 오른쪽방향 삼각지~용산 초고층 아파트들 몇개들어서서 약간달라졌을거같네요

 

 

숲위에 사람들이 사는것처럼 보이더군요..

 

 

슬슬 저녁때가 다가와 지니 여기저기 불빛들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이런날 월차내고 다시 남산가면...이런생각도 좀 드네요..암튼

 

이후로 다시 눈오는 날 남산에 가본적은 없지만 그래도 이때 좀 고생해서 1번갔다온게 

 

그래도 해볼만한 거였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며칠전 눈왔을때 눈맞은 강아지처럼 하늘공원과 불광천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당시 풍경중 몇개를

 

한번 올려봅니다..ㅋ^^;

 


하늘공원올라가는길...

 

눈와서 못올라가게 하면 안갈려고 했는데

 

올라가도 되서 열심히 올라가봤습니다. 앞에 근처 꼬마애 하나가 놀러가고있더군요.

 

 


계단을 다 올라가서 보는 풍경..기분좋더군요^^;

 

여기서 계속 걸어가면

 


하늘공원이 나옵니다.

 


좀 더 걸어 하늘공원안을 돌아다니는데

 

눈와서 그런지 사람들은 10명도 없었습니다.

 


제가 들어와서 나가는 2어시간동안 사람은 몇명밖에못봤으니..ㅋ 저멀리 보이는 반원은 가까이서 보면

 


이렇더군요. 안에서 보면

 


이런분위기..

 


진짜 넓더군요. 이런곳에 사람이 거의 없어서

 

혼자서 세내서 노는 기분?ㅋ^^;

 


하늘공원 나와서 내려오는길에 본 상암구장 근처 풍경..

 


이때쯤이면 추워서 손발이 어는듯한 기분에 빨리 밥먹고 쉬고싶다 생각만..ㅋ^^;

 


다시 내려가다보면

 



먼지는 모르겠는데 하얀눈들과 빨간색들이 대비되어

 

볼만하더군요.

 


다 내려와서 호수쪽으로 가다보면 눈이 뉴스상으론 2.5cm왔다고 하는데 실제론 더많이 온거처럼 느껴지더군요

 


 

호수도 다 얼어서 그위에 눈이 쌓이고 있었구요.

 


상암구장앞도 눈쌓인 분위기..

 

이상 며칠전 눈왔을때 눈맞은 강아지처럼 하늘공원과 불광천을 돌아다닐때

 

제눈에 보였던

 

이러저런한 풍경들을 올려봤습니다..ㅋ^^;

 


 

개인적으로 제일맘에 들던 중국식 등..밤에도 볼만하더군요 ^^;

 

암튼

 

 

요즘 청계천에서 등축제를 하고있습니다

 

점심먹고 산보할때도 보고

 

 

퇴근길에도 저같은 경우는

 

여기서 버스타면  집까지 30분밖에안걸려서

 

퇴근길에 가볍게 몇번 둘러보는중입니다

 

본것들 중에 몇개 정리해서 올려봅니다.^^;

 

안보신분들 시간나실때 짬내서

 

구경 추천드립니다

 




 

일본풍등은 첨봐서 그런지 생소하지만 볼만하더군요^^;

 



 

개인적으로 제일맘에 들던 중국식 등..




낮에 점심빨리먹고 이런걸구경하다가

 

모처럼 야근하다가

 

퇴근길에도 구경을 해보니 역시 등은

 

밤이 더 볼만하더군요










 

밤에 보면 이렇게 여러개동시에 보니 장관이더군요



 

개인적으로 제일맘에 들던 중국식 등..밤에도 볼만하더군요

 

가까이서 보면 가운데 미인도가 여러개 있어 돌아가더군요

 

 

 


여긴 낮에는 썰렁하고 좋은데

 

밤에는

 

 

사람들로 미어터진다는..ㅋ

 

사람들 얼굴은 거멓게 안나오게 처리했습니다^^;

 


밖에나가 위에서 보면 이렇습니다.

 

기타 풍경들...



여러동물들이뛰어놀고

 



 

12지신등불도 볼만하고

 

 


청계천바로앞은 좀썰렁..멀의미하는지..ㅡ

 



불타없어진 남대문은 반갑더군요







 

제가본건 일부에 불과합니다.

 

다른분들 시간나실때

 

구경삼아..보시면 괜찮을거라고 생각해 추천드립니다^^

가족관계증명서를 뛸일이 있어서 동사무소를 가야할일이 생겨 갔었는데

 

볼만하더군요

 

요즘 이름도 다 타운이다 모다 해서 미국식으로 바뀌는 와중에

 

우리나라 전통양식이라 그런지 맘에 들더라구요^^;

 

저만혼자 보기 아까워 공유합니다~^^;ㅋ

 


골목사이에있는데 골목을꺽이자 마자 와 이곳이? 하고 놀라게되었었습니다



 

동사무소만아니라면 마치 도심에 시골속풍경같은 이미지..ㅋ^^;





 

안에서 바깥을 보는데 도심한가운데라는게 잊혀지더군요



 

다른동사무소도 서구식빌딩처럼 하지말고 이런식으로 한옥식으로

 

했으면 외국인들에게 관광상품도되고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똑같은 곳을 석양모드로 찍어본거..실제로 이날 신분증을 안가지고 가서 저녁때 다시왔었다는.ㅠ

 

ps

 

 


 

대학로에서 꽤 유명한 떡복기집입니다

 

1인분에 6천원..ㅡㅡ

 

안에들어가면 자리는 미어터지고 좀만 늦게가면 커플들이 줄을지어 서서 오더군요

 


 

떡복기도 맛있었지만

 

보니까 대학로 커플들을 주타켓으로 떡뽁기+돈까스나+오므라이스등등해서 2,3인용메뉴가 10000~12000원대라서 괜찮더군요

 

저는 그냥 꿋꿋히 떡뽁기만 먹고나왔습니다.ㅋ^^;

 

암튼 다른분들도 대학로갔을때 시간되시면 한번쯤 구경거리로 추천드립니다

 

요근래는 지하철역으론 종로3가 종로5가 안국역 대학로 사이에 있는
 
곳에서 플젝중입니다.
 
다음주에는 다시 플젝장소가 이전된다는 중이라
 
근처에 있는 못가봤던 맛집이나 명소등을 점심/저녁때 열심히 쏴돌아다니는중인데
 

개인적으론 파리 몽마르트 언덕과 해발(125미터)이 비슷해 '서울의 몽마르트'라 불린다는 낙산공원이 아주 맘에 드네요

 

11:40~12사이에 구내식당서 점심먹고 왔다갔다하면 40~55분정도 걸리는 곳인데

 

풍경도좋고 바람쐬기도 좋구 운동삼아 산보로도 좋아서..ㅋ^^;;
 
 


 
걷다가 정자에서 잠시 앉아 쉬면 쉬원해서 좋구..ㅋ
 

 
정자안에서 보이는 서울풍경도 맘에 들더군요
 

 
산에둘러싸인  대학로 일대가 한눈에 보이는 곳도 좋구요..ㅋ
 





정자를 떠나서 좀 걷다보면

 


 
슬슬 성벽이 보입니다.
 


 
위치가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이근처가 바람이 엄청 불어서
 
쉬원하면서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성벽바깥쪽은 열심히 재개발하는 분위기...
 





도심지와 대비되는 성벽의 운치라고 해야하나?^^;

 


 






개인적으론 걷다가
 


 
이쯤에서 서서 왼쪽의 도시와 오른쪽의 성벽 하늘의 구름보며 쉬원한 바람쐬며 쉬는것을 좋아하는 중입니다^^;
 
남들은 주말에 시간내서 온다는곳을 저는 마침 운좋게 옆에있어
 
점심시간대마다 구경하는 곳이라 진자 사진도수백장을찍어봤는데
 
일단 잘나온건 몇장밖에없어서 이거라도 올려봤습니다^^;ㅋ
 
나중에 시간나실대 주말에 한번 구경하기에 좋은곳이라고 강추드리며 이만줄입니다

평일11시에퇴근을 자주하는 제가 모처럼 시간내서

 

운좋게 세종문화회관에서 하는 여자12악방 공연을 보게되었습니다.

 

전통의 중국 악기로 현대적인 음악을 연주하는

 

여성13인조 그룹이라는 것만 알고 갔었는데

 

집에와서 보니

 

 

 2001년, 중국 전역에서 4,000:1의 오디션 경쟁을 뚫고 선발

 

중국 내 유명음악학교에서 중국 전통,민족음악을 전공한 재원으로서

 

연주실력뿐만 아니라 미모와 기량을 갖추며

 

200만장넘는 앨범을 팔았다고 하는군요(참고로 이효리같은 국내가수들요즘많이 팔아야 10만장~20만장안팍입니다)

 

 

개인적으론 타이타닉 주제가랑 Top of the World 와

 

제가 좋아하는 smap의 2번째로 불렀던 世界に一つだけの花  등등

 

2시간내내 참 좋은 시간 보낸거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중국뮤지션연주는 첨보는거였습니다

 

한류다 일류다 그런것을 떠나 중국뮤지션들이 연주하는 거라도

 

좋은음악들은 역시 사람을 기분좋게 한다는 것을 새삼깨닫게되네요

 

 

 

선진국되겠다고 미국따라한다면서 의료보험폐지내 민영화내 등등 한다고 난리치면서
 
왜 이런범죄 형량같은건 미국을 안따라가는지..
 
미국에서 다음과 같은 죄를 저지른 재범자에게 과연 한국처럼 술먹어서...라면서 딸랑12년만 줄건지 의아할뿐이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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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계획 쌈 131화
 
인터뷰내용
 
김영재(가명)/나영이아버지: 아저씨가 너 교회 다니니 묻어래요.
그래서 아니라고 그러니까 입을 막고 번쩍 안고 건물 1층현관으로 들어간 거에요. 바지를 내리고 하라고 시키더래요. 그래서 나는 못한다, 못한다 그러니까 주먹으로 얼굴을 그냥 사정없이 때린거죠. 그리고서는 목을 조르고 화장실변기에다가 몇번을 밀쳤나봐요 내 생각엔 밀어 냈겠죠. 그충격에 애가 말을 하려 그래도 말이 안나오더래요.
목을 졸라 애가 실신한 상태에서 그 뒤에는 어떻게 됐는지 자기도 모르는 겁니다.
7시간인가 8시간인가 수술을 했어요. 대수술 했죠. 그래서 지금 현재 대장에서 항문까지 없어요.
 
늘어져 내려온게 항문이고 여자 생식기가 다 찢어져서 살이 헤져서 대장이 쏟아져 나온거예요. 그래서 소장끝을 잘라서 배꼽 옆으로 뽑아내고 나머지는 직장이니, 대장이니 없어요. 항문도 다 떨어져 나가버렸어요. 여자 생식기가 80%훼손돼서 없어요.
 
진단서의 내용: 성폭력으로 추정되는 완력에 의해 항문 및 회음부 파열. 직장 및 전대장 파열. 질파열등.....(중략) 2008년 12월 11일 전대장 절제술 및 영구적 회장루 조성술 질성형술 회음부 ....(중략) 등을 시행 하였으며 .....(생략)
-영구적 항문소실 및 괄약근 파열. 영구적 회장루 라는 진단이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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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나이는 57. 전과여러번있는 재범..
아이의 나이는 9.
 
한 사람의 인생을 처참히 짓밟아 놓았는데
 
술먹고 정신이없는 상태서 한짓이라 고작 12년형. 말도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술에 취했던 안취했던 일단 사람이고 
 
'결과'가 저렇게 처참한데
 
술취했다는 이유로 12년이라니 이러니 한국이 강간천국어짜구 하는 애기가 이젠 상식이 되가는거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미국이든 유럽이든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나라들같으면 저런짓을 해놓고
 
고작 징역12년받는 웃기는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더웃기는것은
 
가해자 그 X넘은 이것도 형량이 너무하다며  항소를 했답니다.
 
진짜 술쳐먹고 한범죄라면 술깼으면 배가르고 자살이라도 해야 할판에 오히려 형량이 너무 막중하다며(일반적으로 저런죄에 3년만 받아도 중형이라고 하긴 하죠. )
 
항소거치면 보통 형량이 주는 우리나라현실상
 
답답해지더군요.
 
 
후진국이라고 보통 생각하는 중국에서처럼 저런강력범죄는 그냥 총살을 시켜야 하는 넘이라고 생각듭니다
 
제가 내는 세금으로 저런넘 콩밥먹이는데 들어가는 돈1푼도 너무 아깝구요
 
12년동안 하루3끼씩 만 먹어도 13000끼인데 차라리 그돈으로 유상급식때문에 배굶는 애들한테 돌아가는게 좋다는 생각들구요..
 
아참고로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html?id=82124
 
에서 서명받고있습니다. 시간나시면 참가 부탁드립니다.

 

ps

 이번에 말많은 여성부장관에게 이런거에 대해서 물어보면 머라고할까요?

 

고학력 패미관련 사건들 아니면 절대로 안나서는 여성부특징상

 

(울산밀양때강간사건때도 관심없어해서 네티즌들이 난리를 치니 마지못해 잠시 움직이는척해서 욕많이 먹었죠. )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 구렁이담넘듯넘어가겠죠..ㅠ

 

ps

 

일산의 그 성추행 미수범은 선거때라 2mb가 나서머라고 하니 형사들이 바로 잡고

1심에 15년형을 받고 항소해서 8년형이 확정되었스니다. 

 

 이것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파렴치하고 잔인한 살인미수 사건에 그것도 재범인데 12년형이라...

 

도대체 한국법에선 미수와 실제 행한거와 차이가 왜 이따위인지..답답할뿐입니다..ㅠ

 

이근처서 일하는지라 모처럼  퇴근하는길에 잠시들려봤습니다.

 

끝부분만 봤지만

 

듣고 볼만하더군요.

 

 

 

다들 아는분들이랑 왔는지 제너럴시간되니까

 

바로바로 여기저기서 제너럴하더군요

 

나중에 올땐 아는사람들이랑 같이와야 이런거 할때 덜심심할듯..

 

제주위에 앉아있던 어른분들은 이게머꼬? 이러고 적응안되는 눈길로

 

쳐다보던 분위기..ㅋ

 

 

 

 

 

 

이건 찰스턴이라는 노래에 맞춰 공연하던건데 무대서 좀멀리떨어져있었지만 그래도 볼만하더군요

 

 

예전에 서울시청 공사전에 시청을 지날일이 있었는데

 

시원한 분수속에서 여중생4명이서 노는데..

 

뭐랄까 참 부럽더군요.^^;;

 

 

나도 지금 중학생이라면 교복이 어떻게되든 상관없이 들어가 저럴수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하면서

 

지금 제나이는 저애들처럼 저렇게 노는것을 이것저것 많은것을 의식하게 하더군요..^^;;

 

 

 

 

 

 

 

 

 

 

 

 

 

 

 

 

 

 

PS

 

이당시에  주위에서도 많이 찍더라구요..외국인들도 찍고..지나가던 분들도 많이 찍구요..

그래도 혹시나 몰라서 누군지 알아볼수 있는 얼굴은 뺐습니다.


얼굴보면 진짜 귀여웠어요..^^;

 

요즘  .

 

일이빡세서 거의 11시에 퇴근하는 일이 많은데 오늘만큼은 2시이후 일이 손에 안잡혀 일이 진짜 안되더군요

 

그래서 오늘은 모처럼 9시에 퇴근을 하고 시청역앞에 가봤습니다.

 

다행이 위협적인 전경은 없었지만 그래도 경찰은 정확히는 의경? 은 암튼  잔득 있더군요

 

 

누가 저길 차지한다고 저러는지.. 모 동원된 애들만 불쌍하더군요

 


머 그래도 국제개망신사게 전경(외국인들눈에는 병역의 의무를 지는 군인들이) 동원해 버스로 차단하고

 

막던거에 비하며 나아졌다고 생각들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더군요

 


광장여기저기 앉아있는 분들도 계시구..





제앞에있던줄은 남자분이 교회분이라 서서하고 여자분들만 절하던 모습..전 그냥 절했씁니다. 가신자에

 

대한 예의같아서..




좋은곳가셔서 대한민국이 더나아지는 나라가 되는걸 보실수있길 바랄뿐입니다..

 

 謹弔 김대중..ㅠ..ㅠ

 

PS

 

시간나실때 한번 봐보세요~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NhNPYMRuBGU$

 

보통 퇴근시에 삼성역->선릉->역삼->강남->논현->신사 까지 걸어 가서 지하철타고 집에가든가

 

아님 가끔 저녁을 많이 먹어 힘이 남아돌때는 신사->압구정을 지나 한남대교를 건너가서 버스를 타고 집에가는 편입니다.

 

몇주전에 어느날 저녁을 많이 먹어 힘이 남아도는 날 한남대교를 지나갈려고 하는데

 

평소안보이던게 보이더군요

 


여기가 한남대교앞쪽인데 평소안보이던 퍼런게 멀리서 보이더군요



원래 여기선 버스들이 안스는데 이제 버스들이 스는 역도 생겼구요

 

 

그래서 호기심에 지나치다 안에한번 들어가봤습니다.

 

가끔 지나가다 들리면 한강이나 근처 풍경 구경하면서

 

 

 

가볍게 맥주나 음료수먹기딱이더군요

 

제가 20여분정도 머물다 나왔는데 꽤 많은 분들이 왔다갔었습니다.

 

 

 

나와서 본풍경.. 여기서 버스를 타고 집에갈까 하다가

 

 

 

 

 

 

 

방금 마신거있으니 그거 살로 가면안된다고 생각들어서 다시 다리를 건너갔습니다^^;

 

나중에이근처 지날일있을때 한번 쯤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ps

 

아래거는 한남대교걸어가면서 보이는 풍경들..

 

그냥 사족으로 올려봤습니다^^;

 

 

점심때 자주가는 오크우드 구내식당근처에 봉은사가 있는건

 

알고있었는데 귀차니즘 으로 안가보다가

 

모처럼 맘먹고 좀일찍먹고 한번 가본날이

 

고 노무현대통령 5재날이더군요.

 

그날 제가 절한바퀴 돌면서 찍은것들 구경기차원에서 올려봅니다.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6재날은 정신없이 보냈고 7재날은 김해는 못가도 여기나 다시 와볼까 생각중입니다^^;

 



사진을 리사이징 하면서 한글이 깨져서 잘 안보이는데

 

노무현대통령의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이런내용이었습니다.

 





오른쪽 맨끝에보이는 사진이 노무현대통령 사진이었습니다.

 

기타 그날의 그시간대 봉은사 이곳저곳 풍경입니다.

 













절이 도심에 있어 그런지 여기저기에 보이는 병풍처럼

 

절을 감싸고있는 고층건물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가끔 TV에 나오던것이 보이더군요.





역시 점심시간대라 그런지 많은 회사원들 산책중이셨습니다.







이곳저곳 봐도 병풍처럼 둘러싼 고층건물들..

 

예전에 부조화스러웠지만 이젠

 

뭐 한국에선 당연한거지..이런생각중이죠^^;

 












코끼리만 보면 예전에 봤던 3*3 EYES라는 만화책때문에

 

시바신의 아들이란게 먼저 떠오른다는..ㅋ^^;





조그만 연못가에 보이는 불상 인상적이더군요..

 


절을 나와 길을 건너 전체적인 모습을 찍어본거..

 

아이파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절근처에 저런건물이 없는게 더 좋다는 생각들면서도 머 이젠 익숙해지긴했지만..

 

암튼 등잔밑이 어둡다는 말을 이럴때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1년넘게 삼성역에있으면서 한번도 안가본

 

봉은사를 이렇게 구경해보면서

 

도심내에 있는 사찰도 괜찮구나 하는 생각들더군요

 

절내를 걸어다니면서 더운날이지만

 

가끔 부는 바람도 상쾌하고 도심한가운데를 걷는거하곤 먼가 다른 기분좋았습니다

 

PS


 

코엑스에있는 일종의 휴식공간..

 

가끔 점심먹고 이곳에서 음악들으며 triple triple 하며 배를꺼뜨리는 곳이죠..ㅋ^^;;;

 

 

인디언들을 대량학살하던 백인들 이전의 아메리카대륙에서 살던

 

자연의 숭고함 속에 맑은 영혼으로 살아가기를 기원하는 이들의 바램을 담은 기도문입니다

 

며칠전에 읽었던 책속에 나온 건데 개인적으로 맘에들어서

 

프린트해 가지고 다니는중이죠..

 

/////////////////////////////////////////////////////////////////////////////////////////

 

바람속에 위대한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고

당신의 숨결은 온 세상 만물에 생명을 줍니다.

나는 작고 힘이 없습니다.

내게 당신의 힘과 지혜를 주소서.


나로 하여금 당신의 아름다움 안에서 걷게 하시고

나의 눈이 영원히 붉은 노을을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당신이 만든 물건들을 내 손이 존중토록 하시고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내 귀를 예민하게 하소서


당신이 내 부족 사람들에게 가르쳐 준 것들을

나 또한 알게 하시고

당신이 모든 나뭇잎 모든 돌틈에 감춰 둔 교훈들을

나 또한 배우게 하소서

 

내 형제들보다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큰 적인 내 자신과 싸울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


나로 하여금 깨끗한 손,똑바른 눈으로

언제라도 당신에게 갈 수 있옥 준비시켜 주소서

 

그래서 저 노을이 지듯이 내 목숨 사라질 때

내 혼이 부끄럼 없이

당신에게 갈 수 있게 하소서.

 

ps

 

여담이지만

 

자연의숭고함에 기도를 드리던 이종족의 최후의 생존자들은

 

1890톁 12월29일 미 제7기병대에의해

 

애들부터 여자들까지 전원이 운디드 니 에서 학살당해 멸망했습니다.

 

성골과 진골(聖骨—眞骨)은 신라시대의 신분제인 골품제도(骨品制度)의 등급으로, 신라 사회의 최고 신분층인 왕족이다

성골 (聖骨) 

신라시대의 으뜸가는 신분계급.

진골 (眞骨) 

통일신라 때의 신분 계급.

 

성골과 진골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성골진골(聖骨—眞骨)은 신라시대의 신분제인 골품제도(骨品制度)의 등급으로, 신라 사회의 최고 신분층인 왕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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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짜구 하는데

 

그냥 쉽게 일반인들이 이해할수있게 쉽게 애기하면

 

聖骨 성스러울 : 성 , 뼈 : 골

 

성스러운 뼈다귀

 

라는 개념입니다.

 

眞骨 참 : 진 ,  뼈 : 골

 

진짜 뼈다귀

 

라는 개념입니다.

 

왕이될수있는 계층은 성스러운뼈다귀 라고 하고

 

일반 귀족계층은 성스럽진 않지만 그래도 일반사름들과 비교할때 진짜 뼈다귀 라고 하던

 

당시의 왕족의피가섞인 지배층들이 지들끼리 자화자찬 하는 말들일뿐입니다.

 

그것을 힘들게 고상하게 배우니 이해하기 힘든듯..

 

ps

 

참고로 제 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신라 라는 국명은

 

국호인 신라(新羅)에는 왕의 덕업이 날로 새로워져서 사방을 망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둥 아직 정확한 의미가 통일되진 않았지만

 

당시 한자는 발음을 그대로 차용한 경우가 많으니

 

실제론  불교를 받아들이기전 까마귀를 태양의 사자로 부르며

 

태양신 숭배사상이있던 신라라면 자신들을 신국 이라고 부르던 자부심에비추어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신을 "라" 라고 부르던 것과 연관되어 어떤식으로든

 

자기자신들을 새로운 태양 이라며 스스로 높이던 것을  한자어로 표현한것이 신라 고 그것이 지금까지 아무런 의미없이

 

사용한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이 11일..

 

벌써 6/10일이 하루 지나갔네요  

 

개인적으로  6/10일에는 이분들이 생각나더군요

 

 

다른나라에선 대인공격무기이자 화학무기인  다탄두최루탄을 시민들에게 직접 쏘는 것에 항의해

부산에서 어떤 청년이 최루탄을 쏘지말라며 태극기를 배경으로 달려가던 사진

 

이사진은 1999년 AP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사진'에 포함되었습니다

 

 

22년전 6/10일 연세대학교 내에서  불법사용된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님

 

▲ 6월민주항쟁 20주년을 앞두고 재작년 6/9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20주기

추모제에서 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던 모습

 

 

 

 

 

 

 

 

 

 

 

 

 

 

 

 

 

 

 

 

▲ 87년 7월 연세대 교문을 나서 천리길 고향 광주로 향하는 이한열 열사의 장례행렬.

 

 

장례식때 시청 앞 광장

 

 

 

 

 

 

지금처럼 국민이 대통령을 뽑던 시절이 아닌..

 

군부쿠테타로 수많은 사람 총으로 죽이고 된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수백명의

사람들이 체육관에 모여 대통령을 뽑던 1980년대..

 

그래서 당시에 정상적인 자유민주주의국가들처럼

국민이 대통령을 선거로 뽑을수있게 헌법을 개정하자고 하자  

 

당시 전두환정부는 다음 대통령도 체육관에서 전두환이 지명하는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뽑겠다며

현재의 헌법을 지키겠다며 호헌선언(헌법을 지킨다)을 하며 대치하던 21년전..(2007학번 새내기들이 태어나던 해더군요..)

 

1987년 1월14일에 알고있던 선배가 데모한다구 대신 끌려가 그선배있을만한 곳을 불라며

 

물고문전기고문당하고 맞다가 숨진 박종철님..

 

(전두환정부의 공식발표는 평소 지병이 있어 마음이 심약했던 박종철군이 고문관들이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 였었죠...

 

결국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덕에 시체부검 결과 전기고문과

 

물고문에 의한 살인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

 

기타많은 분들이 다치고 죽어가다가 결국

 

세계역사에  6.10 항쟁으로 불리는 대규모민주화운동으로 발전 수많은 국민들이 죽어가는 속에 

 

 

(당시 제자들이 죽는것을 보고 일어선 연세대 교수님들)

 

 

 

(당시 6월달의 일반적인 모습..

 

아직도 남아있는 전세계적으로 악명높은

 

보안법이나 집시법에 의하면 국가의 허락없이 대로에서 2,3사람이상이 모여있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그럴경우 언제든지 공권력을 행사할수 있습니다.

 

이 두악법은 아직도 못고치고 있죠. 그래서 요즘 촛불집회를 불법이라고 부르는 세력들은

 

집시법을 근거로 야간에국가의허락없이 2,3명이상 모여있다며 불법!

 

해산하라고했는데 해산안했다고 해산불응죄(최고 10년형이 가능한 악법이죠)로 불법!

 

이라며 불법을 그만저지르라고 난리죠..ㅡ-)

 

 

 

 

 

(우리나라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인 대기업직원들인 넥타이부대의 시위참여..응..요즘 촛불에선

 

직장인들도 많이 나오는 중이긴 하지만..저때보단 아무래도 규모는 적죠..)

 

 

(박종철군장례식)

 

 

 

 

(시민들의 자발적인 국민장을 막을려고 그사이에다 최루탄을 쏘던 모습..

이건 외국기자가 찍어 역시 해외톱으로

당시 한국분위기를 알렸다고 하더군여

 

참고로 당시 전두환정부는  국내 기자들이 옥상에 올라가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어마어마한 군중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어서 관련 기사가 나가면 안좋으니..

그래서 이런 높은곳서 찍은 군중들 많이 보이는 사진들은 주로 외국인기자들이

많이 남겼다고 하더군요)

 

 

 

결국 전두환이 5.18때처럼 군대를 움직여 민간인들을 싹죽일려고

 

시도하다가 당시 냉전상태에서 국제관계를 고려한 미국의

 

(요즘은 많이 바뀌었지만 당시는 한미연합사에서 주한미군 장군이

 

허락해야 한국군을 이동할수 있었습니다.

 

미군이 반대하면 탄약보급도 안되는 상황이라 한국군부대 이동자체가 불가였죠

 

그래서 5.18당시 광주사람들 학살하던 전두환이보낸 공수부대의 탄약보급을 미군이 눈감아줘서

 

광주학살에 미군이 책임이있다는 말들이 나오죠

)

 

반대로 군대를 이용한 방법을 포기한후

 

체육관에서 전두환에의해 차기 대통령으로 지명(or 임명)된 노태우가 

 

6월29에

 

대통령을 체육관이 아닌

 

국민들이 참여하는 선거로 뽑겠다는 대국민항복선언을 하게 만들었죠.

 

 

그결과는 불과 20년전만 해도 대통령모독죄니 이런게 있던 대한민국에서

 

엄청난 언론 자유를 누릴수있는 시대가되었구요..

 

 

지금와서 저 사진들에 나오거나 안나오는 죽어간 수많은 분들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들이 당시독재정권에 살해되지 않구 오늘날까지 살아게신다면 나이는

 

이제 40살전후일테구 결혼을

 

하셨다면 중학교다 고등or대학교

 

다니는 애1,2정도를 가진 중년남자들로서 일반인들 처럼 정상적인 보통의삶을 사셨을건데...

 

아니면 요즘은 때가때인만큼 촛불들고 가족들과 같이 나왔을지도...

 

 

그렇지 못하고 당시 시대상황속에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수많은 분들..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분들이 바라던 국가가되었는지...

 

 

대통령당시 때먹은 국민혈세 수조원에 대한 벌금으로 몇천억원내라고 하니까 2~300억만 내놓곤

 

나머지는 못내겠다면서 29만원밖에 없다고 아내명의의 수십억짜리 집에서 버티는 전두환을 보면

 

서...


그분의 아들(아들중에 하나는 국내3대 출판사인 재산600억원의 시공사 사장님이시죠..

나머지도 당 강남땅부자들..) 딸들

게다가 재산이 보통 20,30~40억원대라는 손자손녀들(

 

어린나이네 벌써 수십억원짜리 빌딩을 몇채가지고 있는 그손녀중의 하는 몇년전 유럽

 

여행갔다와서 싸이에 유럽이 한국보다 멋있다..한국은 후지다이러다가 난리났었죠..)


잘먹고잘사는 현실을 보면서..뭔가 아이러닉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도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몇백명이 모여 뽑고 있고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국가라고 구라치는 개념없는 국가였다면

 

우리나라가 지금도 맘에 안드는 것이 많지만 더 쫍팔렸을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22 년전 이때쯤 지금 저희가 살고있는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하신 수많은 분들..

 

그리고 그 희생때문에 고통받고 사는 수많은 분들..

 

에게 고마움이 느껴지네요..더불어 저런게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촛불이 가능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ps

 

mms://mms.plsong.com/plsong/bob/hanyeol/hanyeol_b06.wma
한 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한 후에
내 형제 빛나는 두 눈에
뜨거운 눈물들

한줄기 강물로 흘러
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 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 피맺힌 그 기다림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 이한열열사 장례식때 나오는 음악인데 중간중간에 고 문익환 선생님이 당시 죽어간 수많은 분들
이름을 하나 하나 열거하시는데 갠적으로 눈물이 나올뻔했죠..
동영상으론
http://www.mgoon.com/mulpi/Mov/CommonView.aspx?VID=668082 추천드립니다

2,3년전에 서울시립미술관이나 시청앞광장은 자주 지나는 편인데

 

생각해 보니 서울에 태어나서 한번도 덕수궁안에 들어가본적이 없더군요.

 

경복궁이나 창덕궁쪽은 1,2번 가봤던거 같은데..

 

그래서 운좋게 지날일이 생겼을때 태어나 첨으로 가봤었습니다.^^;;;

 

여러번 보신분들은 pass~

 

첨보는 분들은 그냥 이런게 있었구나..정도로 봐주세요..^^;;;;

 

 

 

 

조선말대한제국시대 건물이라 그런지 동서양양식을 둘다 가지고있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덕수궁 석조전을 정면에서 본거..

 

 

덕수궁미술관..

 

 

미술관과 덕수궁석조전 연결된곳

 

 

덕수궁돌담길에서 본 석조전

 

 

 

 

왕이 신하들과 차마시던곳..

 

 

 

 

왕이 나오면 저 비석에 적힌 관직에 따라 신하들이 위치해 있어 엎드려 있었다고 합니다..

 

 

덕수궁을 대표하는 궁들을 한화면에 대충 담아본것..^^;

 

 

석조전을 바로 앞에서 가깝게 봐본거..

 

 

석조전 밑부분인데 상당히 규모가 크더군요..

 

 

이것이 그 유명한 덕수궁돌담길중의 일부인데.. 꽤 크더군요..

 

 

덕수궁왼쪽길은 이유는 모르겠는데 전경부대가 진을 치고 있더군요..앞쪽으로 보이는 것은 서울시립미술관입니다.

 

 

서울시립미술관과 덕수궁사이에 있던 자전거 택시입니다. 가격은 기억이 안나네요..^^;

 

 

당시 미술관앞에 있던 인형(??) 첨에 멀리서 봤을때 귀달린 모자를 쓴 사람인줄 알았죠..^^;

 

 

 

여기저기 보이는 소화기..빨간색이라 주위와 좀 부조화스러웠습니다. 안보이게 하거나 색깔좀 바꿨으면? 해봤다는..^^;

 

 

시청앞광장에서 바로 보이는 덕수궁 입구입니다.

 

요즘 이앞은 경찰말그대로라면 상부의지시없이 지네맘대로 깽판치는 의경들이

 

사람들에게 천인공노할 공분을 사는 중이라 자주 TV에 나오더군요

 

ps 1

 

일제때 일본넘들에 의한 파손이야 그렇다 치고 해방후에도 덕수궁은 1960년 대 들어서 태평로 일대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담장이 허물어져 나갔고 대한문으로부터 태평로 파출소까지 6m 안쪽으로 도로를 넓히면서 담장을 허물고 돌담 대신 철책으로 다시 담장을 치게되었구 결국 다시 복구하는데 10년이걸렸었죠..

 

그러다가 창경궁안에다 동물원 있던것처럼 당시 서울시는 덕수궁을 도시민의 공원, 놀이공간으로 만든다는 계획 아래 궁내에 스케이트 장을 만들고, 벤치를 놓는가 하면은 상점과 음식점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뜻있는 분들에의해 많은 비판을 받다가 어느정도 복원되어 오늘날의 모습이 되긴 했지만..궁궐의 면모를 지금으로선 찾기가 어렵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ps 2

 

전체적으로 아무래도 시청근처라 그런지 고궁근처에서 어떻게 찍어도 현대빌딩들이 같이 보이는게..좀 그렇더군요.

 

서구선진국들은 고궁근처에 현대적인 건물을 안짓는다고 들어거든요.

 

참고로 옆에 서울시청이 있는데 곧 20층이 넘는 엄청난 규모의 신청사가 생긴다고 해서 말이 많습니다.

 

서울시에서 조만간 경복궁앞 에 30층짜리 빌딩 3개(경복궁에서 100M도안된위치인데 경복궁이 문화재이지 담은 문화재가

 

아니라 그 근처에 지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서 말이 많죠..ㅡ.)와 연관되어..계획대로 다 지어지면 경복궁이나 덕수궁이나...

 

경관이 좀..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는중이죠..ㅠ.ㅠ

 

암튼 요즘 대한문이 자주나와

 

대한문안에 이런게있었다..정도로 올려봅니다^^;

 

날씨가 너무 좋은데 늦잠자다 12시넘어 일어나


 

점심먹고 두리번하다가

 

이런날씨좋은날엔 (전부터 출사할려고 생각했던)

 

수원화성을 갈까 장지역 유채꽃공원을 갈까

 

하늘공원을 갈까 고민하다가

 

인천사는 친구넘이랑 통화하다가 제가  조문이나 가자고 해서

 

수원사는 넘도 올라온다고 해서

 

결국 시청쪽으로가게되었습니다.


 

쏘나기가 내려 잠시 피했다가 청계천을 걷다가 광화문쪽으로 쭉 걷는데

 

전경들이 때거지로 그쪽을 막고있더군요

 

저쪽은 못갑니다. 다시 오던길로 돌아가서 나가라고 하더군요

 

 

나간후에 바깥쪽을 걸어다가보니 아예 전경버스로 둘둘말았더군요

 

사진에는 못담았지만 조선일보쪽도 마찬가지더군요

 

촛불항쟁때 많은분들이 조선동아를 비판하며

 

조선 동아 본사에 달결던지고 그럴때 조동이 사설동원해

 

머라고 하니 그이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확실하게 국민혈세들여

 

전경부대를 쫙깔아 지켜주는 관행아닌 관행이 계속 유지되는거 같아

 

내가 내는 세금이 아까웠습니다.

 

 

중간에 버스에 보니 저런게 붙어있던데

 

저기서 말하는 국민에 나는 속할수가있는지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쳤습니다^^;

 

암튼

 

계속 걸어서 시청쪽을 가다가 추모줄 맨끝에 5:30분쯤에

 

계속 고인에 대한 이런저런애기를 하며친구들이랑 스게되었습니다.

 

시청광장을 개방했으면 가까운곳이라 좋았겠지만 최종목적지는

 

저길건너 덕수궁돌담을 둘둘감은 후에 대한문앞이라

 

엄청오래기달리게되었습니다

 

중간에 줄이 시청지하철역을 통하게되더군요

 

시청쪽은 전경들이 잔득앉아있어 걸어갈수도없구요

 

 

역사안 엄청 더웠습니다

 

웬일로 보통 지하철역사안은 요즘 에어콘 틀어 쉬원한데

 

역사내 방송들어보니 갑자기 모든 에어콘이 고장나 열심히 고치고있으며

 

6/1일까진 고칠거니 노약자나 애들은 더우면 나가라는 말나오고 있더군요

 

몇몇분들 누굴초딩으로 아냐?ㅡㅡ 이러고있구...

 

지하철안에선 일부분들이 별명쥐박 인상천박 경제쪽박 인상천박 언론속박 국민협박 민주주의핍박

 

등등의 표어를 들고계씬분들이있었습니다.

 

사진엔 얼굴이 나와서 PASS~^^;

 

 

줄이 덕수궁으로 바로 못가고 조선일보/서울시의회쪽으로되어있는데

 

중간에 어딘가에서 한겨레신문을 잔득들고와서 공짜로 가져가도된다고 해서

 

다들 한겨레를 보며 기달리는 시간 무료함을 달랬습니다.

 

바로 앞에 국내1언론사라는 조선일보가 있는데 다들 한겨레를 보는 풍경..기분 묘하더군요

 

 

 

이쪽도 건너편과 마찬가지로 전경버스들이 1차선을 차지하고 물새틈없이

 

막고있어 교통체증이 심하더군요

 

 

어떤분이

 

전경높은분들에게

 

시청앞호텔에서 니네들을 보면

 

전경은 군인으로 알텐데 군인들이 중무장하고 국민들을 째려보며

 

이렇게 하는게 올바르냐? 이러니까 다들 우리도 위에서 시키니 할뿐입니다. 라며 말하는데

 

불쌍하더군요. 제가 봐도 전경들대신 그냥일반 경찰들 몇세워놓고 폴리스라인 설치하면될일을

 

외국인들보기에 중무장한군인들로 이렇게 하는거 국민들도 전경들도 ...서로 피해가는일같아보여서..

 

 

 

암튼 서울시의회앞에서꺽여서 덕수궁 뒤쪽으로 쭉 ... 줄을 스면서 슬슬 ..친구들중 인천 수원서 온애들이

 

8시넘었다..지금밥먹고 집에가도 10~11시인디..이러면서 갈등하기시작했습니다

 

전 배고파서 쓰러져 죽는줄알았다는..ㅠ

 

 

중간에 노약자 몇분이 좀밖으로 나갈려고 하는데 그것을 경찰들이 막아서

 

약간의 실랑이가있었습니다.

 

저랑 친구들은 여기구조가 전경들이 쳐들어오면 꼼짝없이 다들 잡혀갈수밖에없는곳들이라

 

좀 불안불안...3시간넘게 서있다보니 배고프고 힘없을때라 행여 불상사가 일어나면

 

그냥몇대맞고 피안터지게 등위주로 맞고 잡혀가자..이런말이 오갈때였씁니다

 

그러다가 줄서있은지 4시간이 다되가 대한문근처가까이 가니

 

우는사람들도 있구 분위기가 숙연해지더군요

 

 

영정사진이 3군데 나눠져있더군요

 

전 친구들이랑 맨 왼쪽줄로 스게되었습니다


엄마 아빠 세대는 이승만이나 박정희 or 김영삼이나 김대중을 우리대통령이라고 하지만

 

제가 사회생활시작하고 21c를 시작하면서 제가 우리대통령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현재는 노무현밖에없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너무나 바보라서 불의와 타협하는것을 떠나 불의를 척살하지 못해 결국

 

역으로 당해버린 바보 노무현에게...

 

내가 이런식이라도 조문을 한다면 그건30.40년후일거라고 생각하고있던지라 너무나 당황스럽지만

 

암튼 잘가라고   니원칙과 생각을 지키며

 

이승에서처럼 고졸이라고

 

빈농의자식이라고 개무시당하던 세상이 아닌 좋은 세상에서 즐겁게 살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습니다.ㅠ

 



하고나서 보니 전 맨 왼쪽에서 했더군요.



촛불들고 돌아다니면 계속 전경들이 끄라고 끄라고 해서 결국은 껐습니다.

 

다른분들은 모아놓더군요

 

암튼 이렇게 화창한 좋은날 거의 5:30~10 사이 4시간안팍의 조문이끝나자마자

 

현실적인 문제로 너무나 배고팠던 친구들과 저는 시청일대와 광화문일대를 돌아다녔습니다

 

다시 수원인천으로 가야할넘들인데 배가고파서 못가니..

 

원랜 2시간정도 걸린다고 치고 8시부터 가볍게 소주나 기울이며

 

노통생각이나 하면서 애기할려고했는데

 

시간이 너무나 오버된 관계로..



 

결국 종로근처서 24시간 하는 감자탕집을 찾아 소주없이

 

가볍게 뼈다귀감자탕과 냉채족발샐러든가먼가를 먹고 밥2공기비벼먹고

 

친구넘들이 수원에서..인천에서..왔는데..

 

ㅡ.ㅡ++해서

 

제가 계산을...하고

 

헤어졌습니다.




이런날에 이런거 하는데 시간을 너무많이 보낸게...좀 그렇지 않나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당분간 내가 우리대통령이라고 할 인재가 나타나기전에 이렇게 추모라도 하며 하루를 보낸거

 

다행이라고 생각할뿐입니다

 

ps

 


어제오늘 검색하다 본사진들인데

 

손자손녀들..아직죽음이라는게 먼지 모르는애들 몇년후에

 

철들면 얼마나 슬퍼할지..

 

그냥이렇게 퇴임후 고향에돌아가 평범하게 촌부로 사는 대통령하나 가질수없는 우리나라 현실..

 

먼가좀 안타깝네요ㅠ




 

 

 

오늘은 사회주의권이나 자본주의국가들 기타 이슬람권도 거의다 쉰다고 하고요.

 

웅..뭐 우리한국은 아직 100% 다 쉴수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쉬는 분들 좀이라도

 

있는 상황에서 

 

5/1일을 전세계적차원에서 쉴수있는 기념할만한 날로 있게 해주신 120여년전 미국노동자들에게

 

(참고로 유혈낭자한 메이데이를 만들게 했던 미국은

 

5/1일을 피해서 9월 첫 월요일을 ‘노동의 날’로 하고있습니다)

 

그리고 20 년전의 한국노동자들에게 늦었지만 경의를 보냅니다.

 

 

ps

 

그런데 작년에 2mb 똘아이정부는

 

과거엔 급격한 성장과 물가상승으로 매년 임금을 조정할 필요가 있었지만,

이제는 비효율적이란 지적이 (재벌들로부터 나와)  노사 임금교섭을 2~3년에 한번씩,

단체교섭과 함께 하는게 바람직하다는 개풀뜯어먹는 소릴하다가 욕쳐먹었는데 요즘도 계속 추진중인지 모르겠군요

 

 

울나라 땅값 집값 교통비 공공비 생활비등등 올라가는 속도가 선진국포함중진국중에서 (경제공황으로각국이 디플레이션에 빠진 가운데

 

유일하게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고물가로 국민들이 고통받는게)

세계1,2위인 주제에 저런 소리를 하니 절라 재수없었는데..

 

암튼

 

제가 몇년전 5/1일관련해서 읽은

 

책값이 7천원인가? 밖에 안하는 얇은 책인데 짬날때 보시면

 

재밌어서 소개합니다.^^;

 


 

 

 

 

 

[도서] 서해역사문고-03 메이데이 100년의 역사

 

  

 

차례

1. 메이데이란 무엇인가
메이데이가 시작되다
메이데이 행사는 어떻게 치러졌는가
메이데이의 의의

2. 메이데이에 민족 해방을 외치다
노동자의 성장과 처음 맞은 메이데이
뜨거워진 메이데이 투쟁
지하로 숨어들어 격문을 뿌리다
항일 무장 투쟁과 함께하다

3. 해방 공간의 메이데이를 가다
전평의 지도 아래 노동자가 하나 되다
변질되어 가는 메이데이

4. 빼앗긴 메이데이와 다시 찾은 메이데이
빼앗긴 메이데이
근로자의 날
어용 노조 한국노총
민주노동조합운동의 성장
아! 다시 찾은 메이데이

 

 

 

 

[정운영의 如是我讀 나는이렇게 읽었다] 메이 데이의 핏빛 역사

고대인들은 5월 첫날 플로랄리아(Floralia) 축제를 열었다. 봄과 꽃의 여신 플로라를 기리는 이 축전은 단연 장미와 장밋빛 잔치였으리라. 기원전 253년 로마에서 비롯된 이 축제일에 즈음해서 현대인은 메이 데이(May Day) 행사를 치른다.

 

그러나 5월의 잔치답지 않게 메이 데이에는 피와 핏빛 얼룩이 가득하다. 역사학연구소가 집필한 『메이데이 100년의 역사』(서해문집, 2004)는 이런 얘기로 시작된다.

 

한쪽에는 100달러짜리 지폐로 담배 말아 피우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7~8달러의 주급으로 목숨을 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개판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개들의 세계는 절대로 그렇지 않으렷다.

 

이런 세상은 바뀌어야 하기에 미국노동총연맹(AFL)은 하루 8시간 노동을 내걸고 1886년 5월 1일 총파업을 단행했다. 시카고 시위에서는 3일 파업자에 대한 경찰 발포로 4명이 죽었다.

4일 헤이마켓 광장에서 열린 항의 집회에 폭탄이 터져 경관 7명이 숨지고, 대응 사격으로 200여명의 사상자가 났다.

 

 노조 지도자 8명을 범인으로 기소한 당국은 이듬해 처형 4명, 종신형 2명, 옥중 자살 1명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그러나 그것은 재판이 아니라 재판을 빌린 살인이었다. 피고인들의 성향이 무정부주의자라는 것뿐 어떤 유죄 증거도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후 진술에서 그들 중의 하나는 “만약 그대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 운동을 쓸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다면 우리의 목을 가져가라”(27쪽)고 외쳤다.

 

그는 또 “우리의 침묵이 오늘 우리의 목을 매다는 당신들의 사형 명령보다 훨씬 강력해지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28쪽)라는 말을 남기고 교수대에 올랐다. 오죽했으면 런던에서 버나드 쇼가 “세상이 8명의 인민을 잃느니 일리노이 주 대법원의 법관 8명을 잃는 편이 낫다”고 직격탄을 날렸을까.

 

뒷날 재조사로 주지사는 그들의 혐의를 벗겨주었으나 6년 전에 가져간 목을 돌려줄 수는 없었다.

 제2 인터내셔널은 1890년 5월 1일을 기해 ‘만국 노동자의 시위’를 선언했다. 메이 데이의 효시였다.

 

정작 유혈로 메이 데이를 연출한 미국은 9월 첫 월요일을 ‘노동의 날’로 정해 딴판을 벌이고 있다.

메이 데이는 박래품(舶來品)이지만 반갑게도 이 책은 ‘메이 데이의 한국사’를 들려준다. 식민지 조선 노동자의 메이 데이 행사는 민족 해방을 위한 투쟁의 장이었다. 일제는 메이 데이 탄압에 혈안이 되었으며,

 

1924년 5월 2일 조선일보는 “시가에는 기마 순사의 말 자취 소리가 요란하고 사상 단체의 사무소 앞에는 사복 형사가 지켜 서서 무엇인지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면, 무산자는 소리 없이 압박에 묻혀 있고 그 대신에 경관대가 메이 데이를 축하하는 듯하더라”(57쪽)라고 썼다. 일제가 전쟁 준비에 광분하던 1938년 메이 데이도 ‘근로일’로 창씨 개명을 한다.

 

해방 공간에서 노동 운동을 주도한 것은 좌익계 전평(全評)이었다. 군정은 진보적 민주주의 정부 수립을 요구하는 등 ‘정치 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1947년 전평을 불법화했다. 대한노총이 이승만 정권의 충복이 되었는데,

 

 일례로 1956년 메이 데이 개회식에서 “이번 선거에서는 노동자의 은인인 이승만 박사를 절대 지지하자”(123쪽)고 용비어천가를 읊조릴 정도였다. 메이 데이는 공산 괴뢰 도당의 선전 도구라는 이승만의 훈시에 따라 1957년 대한노총은 3월 10일을 ‘노동절’로 정하고 정부의 승인을 받았다. 생일을 바꾼 것이다.

 

1963년 박정희 정권은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개칭했다. 근로자란 지칭에는 천황과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일제의 통치 음모가 배었다고 한다.

 

군사 정권의 시녀를 자임한 한국노총은 박정희의 유신 정변이 “구국 통일을

 위한 영단”이고, 전두환의 독재 연장 기도마저 위기 해소를 위한 결단이라고 칭송했다

. 비뚤어진 역사를 바로잡는 데는 전태일의 분신과 김경숙의 죽음에서 6월 대항쟁까지 엄청난 투쟁과 희생이 따랐다.

 

드디어 1989년 재야의 민주 노동 세력은 “민주적인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탄압의 상징인 ‘근로자의 날’을 ‘노동자 불명예의 날’로 규정함과 아울러 메이 데이를 우리의 진정한 노동절로 엄숙히 선포한다”(208쪽).

 

그리고 1990년 메이 데이 기념 100년 만에 민주노총의 누룩 전노협이 결성된다.

이 책은 치열한 시대에 대한 치열한 보고서이다.

 

 

그래서 오늘의 눈으로 읽자면 다소 튀는 부분도 없지 않다. 1904년 4월 레닌은 “낡은 러시아는 죽어가고 있다. 자유로운 러시아가…다가오고 있다”(178쪽)고 치열한 레토릭의 메이 데이 기념사를 썼다.

 

 

2004년 4월 그 자유로운 러시아는 어디 있는가? 그것도 역사의 간지(奸智)라면 해방 공간에서의 함성대로‘노동자 환희의 날 메-데-’가 자본가의 대액일(大厄日)일 필요는 없으리라. 장미는 핏빛도 아름다우니!

49년전 오늘 대한민국정부는  

 

정부차원에서 수백명의 민간인들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미치광이들의 정부를 타도한지 49년째 되는 날인데

 

너무 예전이야기인지 언론에서도 별로 다루질 않는군요.

 

오히려 친일파와 매국노들의 뛰어난 처세술을 찬양하고 그들을 근대화의 선구자 운운하는

 

괴상한 학설이 교과서에 실리며 이승만을 국부라며 그가 저지른 모든죄악을 모른척눈감고 오히려

 

조그만 장점이라도 찾아 침소봉대하는 웃기는 현실이 되었죠.

 

 

암튼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

 

입버릇처럼 애기하던 독실한 교회 장로이자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기도 했던

 

이승만이 지배하던 49년전 대한민국의 1960년 4.19일 화요일.

1960년 4.19일 그날은 지금와선 피의 화요일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49년전 그날 한국에선 이승만정권의 무차별적인 학살로 인해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행사해 반민주반자유부정부패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던  

시민과 학생들이 서울에서만 104명 부산, 광주에선 27명이 이승만정권에 총살당했습니다.

전국적으로 계산하면 노동자 61명, 고등학생 36명, 무직자 33명, 대학생 22명, 국민학생·중학생 19명,기타 15명으로 총 186명이

 

이승만정부의 실탄발포에 아까운 생명을 잃고 6026명이 부상을 당해 끔찍한 피가 펑펑흐르던 날입니다.

결국 그래도 이승만이 계속 정권을 해먹겠다구 버티자

 

6일후인 4.25일 27개대학 258명의 교수님들이 이승만은 물러가라며 14개항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그후 400명의 대학교수님들이

4.19의거로 쓰러진 학생의 피에 보답하자면서

'이 대통령은 즉시 물러가라', '부정 선거 다시 하라', '살인귀 처단하라'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위를 감행 서울시가를 행진하기 시작했습니다.

4.25 교수단 데모는 전국민적인 지지를 받아 다시 연이어 시민들과 학생들이 연이어 궐기하기 시작하고

 

이에 동북아의 미국 꼬봉 이승만을 지켜주던

 

주인국 미국의 정부마저 이승만에게 하야하라고 하자

 

끝까지 버티던 이승만은 결국 4.26 10시에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을 사임한다고

 

하야성명을 발표 한후

 

환호하는 시민들이 파고다 공원에 있던 이승만의 동상 목에 줄을 걸고 끌고 다니는 가운데

 

결국 12년간 잔인한 피의 철권독재를 휘두르던 독재자 이승만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민주혁명에 의해 쫓겨나 4.28에 경무대를 떠나 이화장으로 갔다가

 

1960년 5월 29일 부인과 같이 국민들 몰래 미국의 하와이로 도망가 살다가

 

결국은 대한민국 으로 못 돌아오고 해외에서 죽었습니다.

다음은 이러한 시대 49년전 4.19 오늘 이승만정권의 총에 맞은 죽은 15살 한 여중생의 유서입니다.

 

지금 기준으로 봐서도 너무나도 그당시의 상황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진영숙양(15세, 당시 한성여중 2년)의 유서>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 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와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 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어머니,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윌들이 아니면 누구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잘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가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닌,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 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상 이만 그치겠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인 진영숙 양은 19일 오후 4시 학교를 파한 후 시위에 나가기에 앞서 홀몸인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일단 집에 갔다가 시장에 장사하러 나간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자 편지를 써놓고 거리로 나섰다가 

 성북 경찰서 앞으로 이동하던 버스 에서 구호를 외치다가

 (마치 월드컵때 울나라 팀이 이겼을때 걸거리에서  버스안에서도 대한민국 하며 했던 것처럼...)

 

버스안에까지 실탄 사격을 하던 경찰에 의해 총살 당했습니다.

 갠적으로 이 어린 소녀의 이 유서를 보면 100%는 아니더라도

 

그당시 목숨걸고 이승만의 퇴진을 요구하다 돌아가시거나 다치신 분들의 생각 이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낄수가 있겠더군요.

 근래 들어 어떤 반민주 비민주적인 신문사들은 이승만을 다시본다며 미화를 하고 있지만 이 4.19 시기에 조국의 미래를 위해 힘쓰다가  진영숙 양과 같은 수많은 이름을 알수 없는 돌아 가신분들이 계시길래 오늘날 우리들이 예전에는 못누리던 엄청난 자유를 느낄수 있는 현실에서 

 

 그분들의 희생과 피위에 세워진 대한민국에서 역사를 거꾸로 할려는 무리들을 보면서 얼마나 분노를 느끼실지 못난 후손들에게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지를 생각하면 이분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밖에 가질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히도 지금 정치권에서 어느당이라도 419혁명에 대해 현재 대한민국을 이룩한 것으로 좋게 평가하는 것에 대해

심지어 현 대통령마저 4.19는 성공한 혁명이라고 하는판이니

위안을 삼을뿐입니다..

ps

이승만이 쫓겨나는 계기가 되었던 3.15부정선거 와 대학 교수단 시국 선언문관련 글과 사진입니다.

3·15 부정 선거 지시 비밀 지령

가. 4할 사전 투표 : 투표 당일 자연 기권표와 선거인 명부에 허위 기재한 유령 유권자표, 금전으로 매수하여 기권하게 만든 기권표 등을 그 지역 유권자의 4할 정도씩 만들어, 투표 시작 전에 자유당 후보에게 기표하여 투표함에 미리 넣도록 할 것

나. 3인조 또는 5인조 공개 투표 : 자유당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미리 공작한 유권자로 하여금 3인조 또는 5인조의 팀을 편성시켜, 그 조장이 조원의 기표 상황을 확인한 후 다시 각 조원이 기표한 투표 용지를 자유당측 선거운동원에게 제시하고 투표함에 넣도록 할 것

다. 완장부대 활용 : 자유당측 유권자에게 '자유당'이란 완장을 착용시켜 투표소 부근 분위기를 자유당 일색으로 만들어 야당 성향의 유권자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주어 자유당에게 투표케 할 것

라. 야당 참관인 축출 : 민주당측 참관인을 매수하여 참관을 포기시키거나 여의치 않을 때는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 투표소 밖으로 축출할 것

(『동아일보』, 1960년 3월 4일)


대학 교수단 시국 선언문(1960. 4. 25)

이번 4·19 참사는 우리 학생 운동 사상 최대의 비극이요, 이 나라의 정치적 위길르 극복하기 위한 중대 사태이다. 이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규정(糾正)이 없이는 이 민족의 불행한 운명을 도저히 만회할 길이 없다. 우리 전국 대학교 교수들은 이 비상 시국에 대처하여 양심의 호소로서 다음과 같이 우리의 소신을 선언한다. …

'이 대통령은 즉시 물러가라', '부정 선거 다시 하라', '살인귀 처단하라'

(『동아일보』1960. 4. 26)

 

 

다음사진은 1960년 4월 12일자 부산일보 조간 1면에 나온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다 행방불명되었다가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상태로
마산 앞바다 에서 시체로 떠올라 발견된 마산상고생 김주열의 시체로

4.19혁명의 불을 당긴 경상남도 마산 시민의거의 도화선이 된 사진입니다.


 위 글과 사진만 보더라도 이당시 이승만정권의 폭정이 어떠 했는지
왜 어린 여중생이 저런 일기를 쓰고 혁명에 가담했어야만 했는지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암튼 저때 피흘리며 돌아가신 수많은 분들..

 

그분들이 보시기에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은 그분들이 피를 흘리며 죽을 값어치가

 

있었던 모습이었는지.. 아닌지..

 

하는 생각이 좀 듭니다...

 

저분들이 타도했던 살인귀를 국부랍시며

 

찬양미화하는 반민주세력들이 광분하는 이때에

 

저때 돌아가신 분들이 중상을 입고 어떻게든 살아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60살전후일텐데..살아계셨다면

 

지금 한국의 모습을 어떻게 보실지..

 

암튼 오늘 하루...

 

다른 더 볼만한 많은 뉴스들이 있지만..

 

그래도 49년전에 누군가 우리들과 동갑이거나 연상이거나 아님

 

훨씬 어린 애들이 오늘날 우리들이 누리는 자유를 얻기 위해 피흘러 죽었다는 사실을

 

(당시 이승만정권이 사람을 너무 많이 총살하는  상황에서 국민학생 애들도

부모님 형,누나를 그만죽이세요 라며 시위에 나섰었습니다. 그래서 역시 많이 총맞아 죽었죠...)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몇년전부터 이때만 되면 생각나에요^^;

 

성룡의 취권같은 영화만 보다 첨으로본 홍콩느와르 영화라고 해야하나?

 

암튼 몇년전 이날 자살해서 크게 각인을 시켜서 그런지 몰라도

 

이날만 되면 기억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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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본색>  당연정 (장국영)

 

 

 

 

 

장국영 - 당연 當年情(영웅본색 OST) 

                    
 
씨우 쪼이 와이
 가벼운 웃음 소리, 나에게 따스함을 주고

네이 와이 파이
 너는 나에게 즐거운 전율을 심어주네.

씨우 로우 파이 이우 짜우
,
 가벼운 말소리, 머나먼 길을 빨리 지나가,

짜우 또우 메이
 결국 아름답고 맑은 곳에 닿았네.

이예 헤이
 환호 소리가 일어나니, 아침해가 금화살을 쏘는 것만 같고,

네이 씨우
!
 나는 너와 태양을 향해 다시 웃어보네.

끼우 토이 꼬우
 가볍게 부르는 소리, 함께 눈을 들어 높은 곳을 바라보니,

야우 메이 와이 네이
 맑은 날의 아름다움은 너를 위해 바치는 것이네.

네이 쪼이
 너를 안으니, 그때의 따스함이 다시 일어나고

로위 헤이 메이
 마음 속, 어린 시절의 꿈은 아직 오염되지 않았네.

네이 야우
!
 오늘의 나, 다시 너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때의 은 지금 이 순간 새로움을 더해가네.

네이 로위
 널 바라보니, 눈 속의 따스함이 이미 통하고

로위 메이 꼬이
 마음 속, 이전의 꿈은 조금도 변하질 않았네.

네이 야우
!
 오늘의 나, 다시 너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쪼이
 그때의 은 다시 새로움을 더해가네.
 
 
이예 헤이
 환호 소리가 일어나니, 아침해가 금화살을 쏘는 것만 같고,

네이 씨우
!
 나는 너와 태양을 향해 다시 웃어보네.

끼우 토이 꼬우
 가볍게 부르는 소리, 함께 눈을 들어 높은 곳을 바라보니,

야우 메이 와이 네이
 맑은 날의 아름다움은 너를 위해 바치는 것이네.

네이 쪼이
 너를 안으니, 그때의 따스함이 다시 일어나고

로위 헤이 메이
 마음 속, 어린 시절의 꿈은 아직 오염되지 않았네.

네이 야우
!
 오늘의 나, 다시 너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때의 은 지금 이 순간 새로움을 더해가네.

네이 로위
 널 바라보니, 눈 속의 따스함이 이미 통하고

로위 메이 꼬이
 마음 속, 이전의 꿈은 조금도 변하질 않았네.

네이 야우
!
 오늘의 나, 다시 너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쪼이

 그때의 은 다시 새로움을 더해가네.

 

 

ps

 

몇달전 평일오후에

 

시간이 나서 영웅본색을 보러 갔습니다.

 

 

사진속의 장국영도 주윤발도

 

진짜 20년전에 초딩때봤을때 두근거림을 느끼게 해주더군요

 

실제 영상속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장국영은 왜 이렇게 어려보이는지..어릴때 봤을때랑은 약간 감이 다르더군요

 

 

 

극장안엔사람들 10여명...첨엔 원래좌석에서 보다가 앞에 사람들 머리가

 

보이는게 싫어서 사람들머리가 안보이는 자리에 가서앉아서 보니

 

완전 개인극장기분이었습니다.

 

 

 

 

 

 맨마지막에 음악이 흐르면서 형을 체포하고..체포당한 형이 경찰들에게 걸어가면서

 

끝나는 장면에선 설명하기 힘든 감동도 느껴지더군요

 

몇달후에 영웅본색2...지금도 기억나는 장국영이 아기낳고있는 아내에게 연락해서 죽어가면서

 

아기이름짓고 죽는 장면과 다들죽고나서 마지막경찰들이 들어올때 멋있게 죽어있는 모습등등을

 

큰화면으로 보고싶어 다시 보러갔었죠^^;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넘들을 일컫던 미국인들의 표현]

 

IMF로 거덜나고 철저하게 망해 IMF의  식민지로 전락한 한국을

 

10년동안 수많은 국민들과 좌파정부(국제기준으로 중도우파정권입니다) 가 다시 일으켜 세워

 

외환보유고 2700억$로 세계4위

 

경제력세계11위

 

수출액2000억$에서 4천억$로 세계역사상 가장짧은 기간에 고성장달성

 

등등 수많은 기록을 갈아치우며 10년동안 IMF로 거덜날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웠지만

 

불과 1년만에 대한민국을 말도안되는 고환율 정책과 (자원이 없어 대다수를 수입해서 가공해 수출해 먹고사는 나라에서

 

고환율정책을 쓰면 원자재값상승으로 인한 물가폭등과 이에 기반한 수출가 상승은 기초적인 내용인데 그것도 모르는 아마추어들덕에

 

나라 경제가 거덜나버렸죠)

 

1%의 부자들만을 위해 세금감면과 냈던 세금돌려주기로 돈많은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걷는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들과 반대로

 

가며 수많은 국민들을 도탄에 빠지게 한것도 모자라

 

역사학자도 없는

 

은장도로 자결하도 라도 정결을 최고지선으로 여기던 조선의 처녀들 수백만명을 끌고 가 강제로 강간하던 일본을 위해 변병하며

 

몸팔러 돈벌려갔던 창녀운운하고

 

일제식민지배는 한민족의 축복운운하며

 

일본넘들을 최고로 치는 반한친일매국노들을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한국내 대한민국을 좀먹는 신종친일매국노벌레들에게도

 

 2차세계대전 당시 미국인들 표현처럼

 

저패니쿠스 라고 명칭해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 퇴근길에 지인의 눈온다는 문자를 보고 갑자기 이대로 집에가는거보다 밖에가서 눈이나 보고싶다!

 

라는 생각으로마침시청역지나갈때 밖으로 나와봤습니다.

 

아직 눈은 안오더군요그래서 다시 지하철로 들어가긴 싫어서눈올때까지 기달리지뭐.ㅋ.

 

이러고 청계천근처를 오랫만에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눈이 조금씩 오다가 서대문쪽으로걸어갈때부터 본격적으로 많이 오더군요

 

그때 제눈으로 본 청계천풍경들...

 

사진으로올릴까 해보다가 촛점안잡힌 흔들리는 사진도 많고 1장짜리 사진보단 swf가 날거같아swf로 올려봅니다

 

그냥 어제 청계천근처의 풍경이 이랬다..정도로만 봐주심될듯합니다.

 

 

 


35억원짜리 왕다슬기 주변으로 형형색색이었습니다.

 

신나는 라틴계열음악과 찬송가도 막 울려퍼져서 귀가 아팠구요그래도 보니까 재미는있었어요^^; 

 


청계천 밑에서 봐본거..컨셉은 우주 뭐시기라 눈꽃같은것들하고 별같은게 대롱대롱달려있더군요

 

추운데도 사람들 많이들 와서 돌아다니구요

 

청계천 위에서 봐본거..눈이 좀씩 내리다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내리더군요

 

지하철싫어서 버스타러 서대문까지(실제는 허기져서 떡순이를 사먹곤 악!! 살찌겠다..ㅠ 하면서 운동겸 걸어갔습니다ㅋ)

 

걸어가다보니 눈이 본격적으로 내리더군요서대문 흥국생명 앞쯤에 가니 커다란 산타가 보이고 눈발이 장난아니게

 

날리기 시작하더군요

 

  

 



날씨까 꽤 추우니 다들 몸조리 잘하시길 바라며 이만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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