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에 대해 잘못 알려져 있거나 알려지지 않은 사실, 그리고 진실한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그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고려사(高麗史)》, 《요사(遼史)》, 《송사(宋史)》 등을 꾸준히 공부하여 당대의 상황을 파악해서 쓴 책이라고 설명된 책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읽기 편해서 금방읽을수있는 책입니다.

 

저같은경우는 받자마다 3,4만에 다 읽혀졌습니다.

 

 

이미 어느정도 고려거란전쟁에 대해 알고있는 분들이라면 눈에띄는 

 

기존의 다른 책에서 볼수 없는 내용들이 3가지 있습니다.

 

 

1.

 

송나라를 친 거란의 2대명장인 야율휴가는 계속 중국쪽을 담당하고 야율사진은 소손녕과 같이 

정안국등 발행의 부흥세력을 쳐서 명망시키고 여진족까지 복속시키면서 잡은 포로가 10여만 

20만핑의 말을 노획..이런 걸 보면

 

무려 반세기나 존속하면서 정안국이 발해의 멸망부터 여요전쟁 발발까지의 60여 년간 고려의 완충제 역활을 하면서

엄청 큰 희생을 치렀고 그덕에 고려가 좀 이라도 시간을 벌었다는 생각을 하게 하더군요

 

 

2.

강전이라는 인물에 대한 내용입니다

 

고려사에 안나온 인물이고 송사에 나오는 고려인인데

 

일단의 고려군과 함께 거란의 심장부 근처인 거란족탄생지라는 거란족 성지인 목엽산 근처까지 가서 거란군과 전투를 벌

이고 부여로 갔다가 다시 고려로 돌아왔다고 하는데 성이 강 씨인걸로 봐선

강감찬이나 강민첨장군의 먼친척인가? 생각들게 하더군요

 

고려의 군사원정으로는 꽤 장대한 이력인데 이런분이 고려사에서 누락된건 아쉽다는 생각들었습니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고려사를 만들면서 뭔가 요동정벌등 시대적 상황에서 고민하다 뺀건가? 하는 생각들더군요

 

3. 이 부분은 송사나 요사 어디에 기록된건지 궁금하더군요.

 

 

제가 아는한 이런 기록은 첨 보는 기록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범위에선 요사 에 (성종)왕치가 항복하므로 땅을 떼어 주었다 라는 기록이 있다고만 알고있어서

 

1차 전서 큰 소득없이 돌아가고 강동6주를 주게된것에 대한 정신 승리로 기록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게 사실이라면 유학자,선비왕으로 인식되는 고려 성종이 자국의 국익을 위해 

 

오랑캐인 거란 왕실에 잠시 머리를 숙이고 실질적인 국익을 얻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듭니다.

 

이 부분은 드라마화 된다면 어떤 식으로 표현될지 매우 궁금해집니다

 

더불어 역시나 이거 관련 기록은 고려사등에 없는걸로봐선

 

실제 사실이라면 당시 유학자들이 일부러 누락시킨건가? 생각드네요

 

이 책을 기반으로 드라마화가 진행되고있다고 하니

 

고려거란전쟁에 대해 잘 모르던 분들이 읽는다면 입문서나 개괄서 역활을 하고 드라마에 집중할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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