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전 대한민국에선 한 미친살인마때문에 


419일 하루에만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행사해 반민주반자유부정부패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던  

시민과 학생들이 서울에서만 104명 부산, 광주에선 27명이 총에맞아 돌아가셨습니다.

전국적으로 계산하면 노동자 61명, 고등학생 36명, 무직자 33명, 대학생 22명, 국민학생·중학생 19명,기타 15명으로 총 186명이

실탄발포에 아까운 생명을 잃고 6026명이 부상을 당해  끔찍한 피가 펑펑흘렀습니다.


결국 


27개대학 258명의 교수님들이 미친살인마는 물러가라며 14개항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그후 400명의 대학교수님들이

4.19의거로 쓰러진 학생의 피에 보답하자면서

'이 대통령은 즉시 물러가라', '부정 선거 다시 하라', '살인귀 처단하라'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위를 감행 서울시가를 행진하기 시작했습니다.

4.25 교수단 데모는 전국민적인 지지를 받아 다시 연이어 시민들과 학생들이 연이어 궐기하기 시작하고

미친살인마를 지켜주던 미국정부마저 이승만에게 하여하는게 낫다고 의견을 제시하자

끝까지 버티던 이승만은 4.26 10시에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을 사임한다고 하야성명을 발표 한후

 

환호하는 시민들이 파고다 공원에 있던 미친살인마의 동상 목에 줄을 걸고 끌고 다니는 가운데

 

결국 12년간 잔인한 피의 철권독재를 휘두르던 독재자 이승만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민주혁명에 의해 쫓겨나 4.28에 경무대를 떠나 이화장으로 갔다가

 

1960년 5월 29일 부인과 같이 국민들 몰래 미국의 하와이로 도망가 결국은 조국으로 못 돌아오고 해외에서 죽었습니다.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

 

입버릇처럼 애기하던 독실한 교회 장로이자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기도 했던

 

이승만


그는 결국 대한민국에서 국민에 의해 쫓겨난 미친살인마일뿐입니다.


사람마다 + - 가 있겠지만 이승만은 자기 국민을 자기와 생각이 다르는다는 이유로 죽이던 살인마로서의


악행이 더 높은 놈입니다.



그럼 살인마를 위해


잘했든 못했든 그분이 건국대통령이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인 만큼 정치적 입장을 떠나 

그분의 업적을 알려 건국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 


한기총 심볼. ⓒ한기총


며 5만교회 5만목사 2천만 한국내 기독교인들을 대표한다는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


이승만동상을 서울한복판 광화문에 세우겠다는 것을 보면서



거기엔 이미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 이 계시니 충분하니


차라리 돈많은 한기총에서 (최근에도 1년에 현금이 4조가 넘고 부동산이 80조가 넘는다며 그돈으로 


기독교은행을 만든다고 할정도로 돈이 좀 있으시니 ) 차라리 아주쫌만 기부해서



이승만 기념관을 세워 거기서 자국민을 죽이던 미치광이살인마시절의 역사사료와 


건국할때의 사료를 같이 전시해서 객관적으로 사람들이 보고 평가하게 했으면 하는 생각이듭니다.




ps


당시  419에 죽은 15살 한 여중생의 유서입니다.

 

지금 기준으로 봐서도 너무나도 그당시의 상황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진영숙양(15세, 당시 한성여중 2년)의 유서>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 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와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 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어머니,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윌들이 아니면 누구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잘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가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닌,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 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상 이만 그치겠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인 진영숙 양은 19일 오후 4시 학교를 파한 후 시위에 나가기에 앞서 홀몸인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일단 집에 갔다가 시장에 장사하러 나간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자 편지를 써놓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그녀는 성북 경찰서 앞으로 이동하던 버스 에서 구호를 외치다가 (마치 월드컵때 울나라 팀이 이겼을때 버스안에서도 대한민국 하며 했던것처럼...)

 

버스안에도 사격을 하던 경찰에 의해 총에맞아 돌아가셨했습니다.

  

ps

이승만이 쫓겨나는 계기가 되었던 3.15부정선거 와 대학 교수단 시국 선언문관련 글과 사진입니다.

3·15 부정 선거 지시 비밀 지령

가. 4할 사전 투표 : 투표 당일 자연 기권표와 선거인 명부에 허위 기재한 유령 유권자표, 금전으로 매수하여 기권하게 만든 기권표 등을 그 지역 유권자의 4할 정도씩 만들어, 투표 시작 전에 자유당 후보에게 기표하여 투표함에 미리 넣도록 할 것 

나. 3인조 또는 5인조 공개 투표 : 자유당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미리 공작한 유권자로 하여금 3인조 또는 5인조의 팀을 편성시켜, 그 조장이 조원의 기표 상황을 확인한 후 다시 각 조원이 기표한 투표 용지를 자유당측 선거운동원에게 제시하고 투표함에 넣도록 할 것 

다. 완장부대 활용 : 자유당측 유권자에게 '자유당'이란 완장을 착용시켜 투표소 부근 분위기를 자유당 일색으로 만들어 야당 성향의 유권자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주어 자유당에게 투표케 할 것 

라. 야당 참관인 축출 : 민주당측 참관인을 매수하여 참관을 포기시키거나 여의치 않을 때는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 투표소 밖으로 축출할 것

(『동아일보』, 1960년 3월 4일) 


대학 교수단 시국 선언문(1960. 4. 25) 

이번 4·19 참사는 우리 학생 운동 사상 최대의 비극이요, 이 나라의 정치적 위길르 극복하기 위한 중대 사태이다. 이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규정(糾正)이 없이는 이 민족의 불행한 운명을 도저히 만회할 길이 없다. 우리 전국 대학교 교수들은 이 비상 시국에 대처하여 양심의 호소로서 다음과 같이 우리의 소신을 선언한다. … 

'이 대통령은 즉시 물러가라', '부정 선거 다시 하라', '살인귀 처단하라'

(『동아일보』1960. 4. 26)

 

 

다음사진은 1960년 4월 12일자 부산일보 조간 1면에 나온


 


 



부정선거에 항의하다 행방불명되었다가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상태로 
마산 앞바다 에서 시체로 떠올라 발견된 마산상고생 김주열의 시체로

4.19혁명의 불을 당긴 경상남도 마산 시민의거의 도화선이 된 사진입니다.


 위 글과 사진만 보더라도 이당시 이승만정권의 폭정이 어떠 했는지 
왜 어린 여중생이 저런 일기를 쓰고 혁명에 가담했어야만 했는지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암튼 저때 피흘리며 돌아가신 수많은 분들..

 

그분들이 보시기에 지금 대한민국에서 그분들이 의해 쫓겨난 


분의 동상을 세우겠다는 미련하고 무식한 후손들을 보면 그분들은 천국에서 무슨생각을 하고계실지..걱정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