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맘에 몇몇 사진들 여기저기서 취합해서 올려봅니다.ㅠ







지난 5월 4일 서울 백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던 리영희 선생님이 지인들의 방문에 활짝 웃고 계실때..

 


군부독재시절 사실을 알면 안되던 시절

 

탁월한 영어실력으로 미국공문서에 나와있는 사실들을 정리해서 우리사회에 잘못알려진것들을

 

진실을 밝히실때 그것을 죄라며 감옥에 쳐넣었을때...

 

맨마지막 사진은 1989에 방북취재를 기획했다는 이유만으로 구속돼 5번째 옥고를 치르다가

 

집행유예로 출감한 당시 한겨레고문이시던  리영희 선생님에게  부인 윤영자씨가 두부를 먹이는 ‘액땜 행사’를 하고 있을때...

 

 

625때 군대도 안가고 그후에도 군면제로 기득권을 누리는 세력들이 엉뚱하게 이분을 좌빨이니 빨갱이니 난리를 치지만

 

 ?으실때 한국전쟁 당시 군입대를 두번연장하시며 육군소령으로 전역..

 

영이실력이 좋고 영어교사를 한경력때문에 주로 un군연락장교단으로 소속되 미군관련일을 하셨습니다.

 

권총을 백발백중 잘 다루시던 걸로 유명하셨죠

 

군대때 사진은 제가 못찾았고 좀 더 이후 사진입니다.

 

암튼 이분은 한국사회 지식인중에서 영어로 거의 한국내 top에 속하는 지식인이라

 

미국 언론사에 자유롭게 기고를 하시며 그들과 직접소통ㅇ 가능하셔서 한국에 필요한 정보들을 영어원문으로 구하시는

 

능력이 탁월하셨죠

 

 

 

미국에 방문하실때 뉴스들.. 미국언론에 소개된 뉴스들..

 

지금도 <워싱턴 포스트>를 뒤지면 나오는 그의 기사들은 미국 사회에 당시 다른 누구도 하지 않았고 또 할 수 없었던 이승만 독재정권 치하의 한국 실정 제대로 알리기를 한 셈이 됐고 그것은 이승만 하야에도 영향을 끼쳤다고하더군요.

 

그 활약 덕에 1959년 그는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에서 신문학 연수를 받을 수 있었고, 귀로에 들른 일본 도쿄 서점에서 사들고 온 책들 중의 하나가 님 웨일스의 <아리랑의 노래>이고 그덕에 우리나라에서 일제시절 매국노들만 설쳤던것이아니라 중국공산당에서 활동한 조선인 혁명가 김산(장지락)의 생애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목숨과 삶을 걸고 독립운동을 하던 분들이 있다는것을 알수있었죠.

 

 

이분이 당신의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어떤사람이 쓴글을 읽어보면

 

“선생님의 <전환시대의 논리>와 <우상과 이상>을 읽다 말고 너무도 두려워져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괴로움에 떨면서 꼬박 밤을 새웠습니다. 고등학교까지의 주입식 학교교육으로 구축된 신념 체계가 저의 내면세계에서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었습니다. 하지만 여태까지 거꾸로 서 있던 온갖 사물과 관계와 색깔들을 제 모습, 제 색깔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차라리 두려움과 형벌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붓이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실감나죠..

 

지은 글은 키만큼 높았으니
당대의 젊은이들에게 물어보라
사숙한 제자 얼마나 많은지
깨우치고 이끌어 동시대 영재들을 
격동시켰으니
뒤 이을 인재 그 뉘인가.

중국의 5.4혁명을 이끌었던 양계초가 사망했을 때 여석산(閭錫山)이란 학자가 쓴 조사의 한 구절을 삼가 리영희 선생 영전에 바치는 글을 보면서 이분에게 딱 맞는 글이란 생각도 들구요..


개인적으론


&size=599|900


이분의 이 마지막 책을 읽고 거꾸로 책들을 읽어나갔었죠.


어제 01시전후로 뜬 리영희선생님의 소식을 들으며 하루종이 기분이 모하더군요


한번도 직접뵌적도 없지만 이분덕에 그나마 제가 즐기는 당연한것들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누리고있다는 생각은 왠지 먼가 빚진기분도 들구요.


이분이 뇌졸증으로 쓰러지시고 제대로 거동도 못하실때

 

 




이분이 맘에안들어하시는 이분과 반대인 세력들의 천하가된이후


군면제기피세력들과 조중동을 필두로 


이분책을 읽었던 386들이 한국경제를  망쳤다며 한국경제를 망친 잘못된 의식화의 죄를 사죄하라고 난리를 치는 와중에


김수환 추기경 법정스님 노무현 대통령 김대중대통령등등 사회의 원로로서 먼가 말씀을 해주셔야 할분들이 하나둘씩 너무도 빨리


들 저세상으로 가시는 와중에 리영희선생님 마저 돌아가시니 먼가 답답하네요..ㅠ



20C거장 피카소는 스페인 내전때 전쟁의 참상을 게르니카라는 이름의 그림을 그려 남겼습니다.(자기의 고향마을이기도 한곳에서 스폐인 쿠테타군을 도와주던 나치의 무차별공습으로 수십명이 죽은데 울분을 느끼고 그렸다고 하죠)

 

 


그뿐만 아니라 6.25때도 전쟁의 참상 특히 미군의 한국인 학살을 그림으로 그려 남겼였죠. 

 

  

왼쪽에는 발가벗겨진 채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고

 

오른쪽에는 총을 겨눈 무장군인들이 있는 이 단순한 구도의 korea war 라는 이 그림은

 

당시 625내전당시 황해도 신천군이라는곳에서 그곳인구의 1/4인 3만5천명이 총살당한 신천대학살 이라는 민간인 학살을 모티브로

 

하고있습니다. 당시의 참상은 전세계적으로도 알려져 피카소같은 분들도 이것을 그림으로 언급했었다고 하죠.

 

참고로

 

북한에선 공식적으로 미군이 민간인을 학살했다며 지금도 신안에 신안미군양민대학살 전시관을 지어놓고 기리고있는반면

 

미국에선 모르는 일이다..라고 하고있고

 

남한에선 절대 미군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 신천군내 기독교우익청년단체서  무장한빨갱이들을을 우발적으로 조금 죽인 사건이라고 주장하는 등

 

남북한미국모두가 견해가 다르지만

 

암튼 중요한건 시도 아닌 일개 듣보잡 군에서 군인도 아닌 수만명의 사람들이 학살당하는

 

이런일은 625같은 전쟁시기니까 가능하다는 생각이듭니다.

 

평시라면 절대로 일어날수없는 일이 전시기때문에 가능했던 비극이었다는 생각때문에

 

갠적으론 전쟁은 상상을 초월하는 재앙을 가져다 주는..걸로 되도록이면 일어나면 안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는중이죠^^;

 

625 60주년인 오늘...진짜 전쟁이 날지 안날지 모르지만 한반도의 전쟁가능성으로 국가신용등급이 왠만한 동유럽 빈국보다 떨어진 현실에

 

서 이그림을 보며 재발전쟁은 일어나지않길 바래봅니다.

 


여담이지만 피카소의 이 그림은 대한민국정부와 미국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샀습니다.

 

그래서 한때 한국에선 그림물감의 이름이 "피카소"라 하여 판매하던 회사사장은 보안법위반으로 잡혀가고 제품 판매를

 

금지시킨 사례까지 있다고 하더군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