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교보안에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게 있더군요

 

첨엔 그냥 지나쳤다가 다시 볼때 자세히 보니

 

여러 명사들의 말씀들이 써져있더군요

 

 

존경스러운 박원순 서울시장님의 말씀..맘에 와닿더군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반대편에선 좌빨 종북이라고 개소리 하지만..암튼) 소설가 조정래님의 말씀도 맘에 와닿았습니다

 

 

요즈 소설 고구려진행방향이 좀 맘에 안와닿지만 암튼..말씀은 좋았습니다.

 

 

 

오마이뉴스대표이신 오연호님의 말씀도 좋더군요

 

 

기타 다른분들도...

 

더불어 글내용도 좋았지만 각자 친필 서체가 나름만의 독특한 성격이 있어 좋았습니다

 

광화문 교보문고 가셨을대 시간나실때 한번쯤 자세히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미인박명의 반대말이 먼지 모르겠네요..이럴때 사용하면 될거같은데..

어떤쥐는 자기도 이제 나이먹고 노인이라며 구라치는 추한 넘들도 오래사는데

아이패드,아이폰등등 인류의 삶을 바꾸신 인류에 도움되시는 분이 넘 일찍 돌아가셔서 안타까운..ㅠ


날씨가 너무 좋은데 늦잠자다 12시넘어 일어나


 

점심먹고 두리번하다가

 

이런날씨좋은날엔 (전부터 출사할려고 생각했던)

 

수원화성을 갈까 장지역 유채꽃공원을 갈까

 

하늘공원을 갈까 고민하다가

 

인천사는 친구넘이랑 통화하다가 제가  조문이나 가자고 해서

 

수원사는 넘도 올라온다고 해서

 

결국 시청쪽으로가게되었습니다.


 

쏘나기가 내려 잠시 피했다가 청계천을 걷다가 광화문쪽으로 쭉 걷는데

 

전경들이 때거지로 그쪽을 막고있더군요

 

저쪽은 못갑니다. 다시 오던길로 돌아가서 나가라고 하더군요

 

 

나간후에 바깥쪽을 걸어다가보니 아예 전경버스로 둘둘말았더군요

 

사진에는 못담았지만 조선일보쪽도 마찬가지더군요

 

촛불항쟁때 많은분들이 조선동아를 비판하며

 

조선 동아 본사에 달결던지고 그럴때 조동이 사설동원해

 

머라고 하니 그이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확실하게 국민혈세들여

 

전경부대를 쫙깔아 지켜주는 관행아닌 관행이 계속 유지되는거 같아

 

내가 내는 세금이 아까웠습니다.

 

 

중간에 버스에 보니 저런게 붙어있던데

 

저기서 말하는 국민에 나는 속할수가있는지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쳤습니다^^;

 

암튼

 

계속 걸어서 시청쪽을 가다가 추모줄 맨끝에 5:30분쯤에

 

계속 고인에 대한 이런저런애기를 하며친구들이랑 스게되었습니다.

 

시청광장을 개방했으면 가까운곳이라 좋았겠지만 최종목적지는

 

저길건너 덕수궁돌담을 둘둘감은 후에 대한문앞이라

 

엄청오래기달리게되었습니다

 

중간에 줄이 시청지하철역을 통하게되더군요

 

시청쪽은 전경들이 잔득앉아있어 걸어갈수도없구요

 

 

역사안 엄청 더웠습니다

 

웬일로 보통 지하철역사안은 요즘 에어콘 틀어 쉬원한데

 

역사내 방송들어보니 갑자기 모든 에어콘이 고장나 열심히 고치고있으며

 

6/1일까진 고칠거니 노약자나 애들은 더우면 나가라는 말나오고 있더군요

 

몇몇분들 누굴초딩으로 아냐?ㅡㅡ 이러고있구...

 

지하철안에선 일부분들이 별명쥐박 인상천박 경제쪽박 인상천박 언론속박 국민협박 민주주의핍박

 

등등의 표어를 들고계씬분들이있었습니다.

 

사진엔 얼굴이 나와서 PASS~^^;

 

 

줄이 덕수궁으로 바로 못가고 조선일보/서울시의회쪽으로되어있는데

 

중간에 어딘가에서 한겨레신문을 잔득들고와서 공짜로 가져가도된다고 해서

 

다들 한겨레를 보며 기달리는 시간 무료함을 달랬습니다.

 

바로 앞에 국내1언론사라는 조선일보가 있는데 다들 한겨레를 보는 풍경..기분 묘하더군요

 

 

 

이쪽도 건너편과 마찬가지로 전경버스들이 1차선을 차지하고 물새틈없이

 

막고있어 교통체증이 심하더군요

 

 

어떤분이

 

전경높은분들에게

 

시청앞호텔에서 니네들을 보면

 

전경은 군인으로 알텐데 군인들이 중무장하고 국민들을 째려보며

 

이렇게 하는게 올바르냐? 이러니까 다들 우리도 위에서 시키니 할뿐입니다. 라며 말하는데

 

불쌍하더군요. 제가 봐도 전경들대신 그냥일반 경찰들 몇세워놓고 폴리스라인 설치하면될일을

 

외국인들보기에 중무장한군인들로 이렇게 하는거 국민들도 전경들도 ...서로 피해가는일같아보여서..

 

 

 

암튼 서울시의회앞에서꺽여서 덕수궁 뒤쪽으로 쭉 ... 줄을 스면서 슬슬 ..친구들중 인천 수원서 온애들이

 

8시넘었다..지금밥먹고 집에가도 10~11시인디..이러면서 갈등하기시작했습니다

 

전 배고파서 쓰러져 죽는줄알았다는..ㅠ

 

 

중간에 노약자 몇분이 좀밖으로 나갈려고 하는데 그것을 경찰들이 막아서

 

약간의 실랑이가있었습니다.

 

저랑 친구들은 여기구조가 전경들이 쳐들어오면 꼼짝없이 다들 잡혀갈수밖에없는곳들이라

 

좀 불안불안...3시간넘게 서있다보니 배고프고 힘없을때라 행여 불상사가 일어나면

 

그냥몇대맞고 피안터지게 등위주로 맞고 잡혀가자..이런말이 오갈때였씁니다

 

그러다가 줄서있은지 4시간이 다되가 대한문근처가까이 가니

 

우는사람들도 있구 분위기가 숙연해지더군요

 

 

영정사진이 3군데 나눠져있더군요

 

전 친구들이랑 맨 왼쪽줄로 스게되었습니다


엄마 아빠 세대는 이승만이나 박정희 or 김영삼이나 김대중을 우리대통령이라고 하지만

 

제가 사회생활시작하고 21c를 시작하면서 제가 우리대통령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현재는 노무현밖에없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너무나 바보라서 불의와 타협하는것을 떠나 불의를 척살하지 못해 결국

 

역으로 당해버린 바보 노무현에게...

 

내가 이런식이라도 조문을 한다면 그건30.40년후일거라고 생각하고있던지라 너무나 당황스럽지만

 

암튼 잘가라고   니원칙과 생각을 지키며

 

이승에서처럼 고졸이라고

 

빈농의자식이라고 개무시당하던 세상이 아닌 좋은 세상에서 즐겁게 살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습니다.ㅠ

 



하고나서 보니 전 맨 왼쪽에서 했더군요.



촛불들고 돌아다니면 계속 전경들이 끄라고 끄라고 해서 결국은 껐습니다.

 

다른분들은 모아놓더군요

 

암튼 이렇게 화창한 좋은날 거의 5:30~10 사이 4시간안팍의 조문이끝나자마자

 

현실적인 문제로 너무나 배고팠던 친구들과 저는 시청일대와 광화문일대를 돌아다녔습니다

 

다시 수원인천으로 가야할넘들인데 배가고파서 못가니..

 

원랜 2시간정도 걸린다고 치고 8시부터 가볍게 소주나 기울이며

 

노통생각이나 하면서 애기할려고했는데

 

시간이 너무나 오버된 관계로..



 

결국 종로근처서 24시간 하는 감자탕집을 찾아 소주없이

 

가볍게 뼈다귀감자탕과 냉채족발샐러든가먼가를 먹고 밥2공기비벼먹고

 

친구넘들이 수원에서..인천에서..왔는데..

 

ㅡ.ㅡ++해서

 

제가 계산을...하고

 

헤어졌습니다.




이런날에 이런거 하는데 시간을 너무많이 보낸게...좀 그렇지 않나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당분간 내가 우리대통령이라고 할 인재가 나타나기전에 이렇게 추모라도 하며 하루를 보낸거

 

다행이라고 생각할뿐입니다

 

ps

 


어제오늘 검색하다 본사진들인데

 

손자손녀들..아직죽음이라는게 먼지 모르는애들 몇년후에

 

철들면 얼마나 슬퍼할지..

 

그냥이렇게 퇴임후 고향에돌아가 평범하게 촌부로 사는 대통령하나 가질수없는 우리나라 현실..

 

먼가좀 안타깝네요ㅠ




 

 

48년전 오늘 대한민국정부는  

 

정부차원에서 수백명의 민간인들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미치광이들의 정부를 타도한지 48년째 되는 날인데

 

너무 예전이야기인지 언론에서도 별로 다루질 않는군요.

 

암튼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

 

입버릇처럼 애기하던 독실한 교회 장로이자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기도 했던

 

이승만이 지배하던 48년전 대한민국의 1960년 4.19일 화요일.

1960년 4.19일 그날은 지금와선 피의 화요일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48년전 그날 한국에선 이승만정권의 무차별적인 학살로 인해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행사해 반민주반자유부정부패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던  

시민과 학생들이 서울에서만 104명 부산, 광주에선 27명이 이승만정권에 총살당했습니다.

전국적으로 계산하면 노동자 61명, 고등학생 36명, 무직자 33명, 대학생 22명, 국민학생·중학생 19명,기타 15명으로 총 186명이이승만정부의 실탄발포에 아까운 생명을 잃고 6026명이 부상을 당해 흐르는 끔찍한 피가 펑펑흐르던 날입니다.

결국 그래도 이승만이 계속 정권을 해먹겠다구 버티자 6일후인 4.25일 27개대학 258명의 교수님들이 이승만은 물러가라며 14개항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그후 400명의 대학교수님들이

4.19의거로 쓰러진 학생의 피에 보답하자면서

'이 대통령은 즉시 물러가라', '부정 선거 다시 하라', '살인귀 처단하라'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위를 감행 서울시가를 행진하기 시작했습니다.

4.25 교수단 데모는 전국민적인 지지를 받아 다시 연이어 시민들과 학생들이 연이어 궐기하기 시작하고

이제 이승만을 지켜주던 미국정부마저 이승만에게 하여하는게 낫다고 의견을 제시하자

끝까지 버티던 이승만은 4.26 10시에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을 사임한다고 하야성명을 발표 한후

 

환호하는 시민들이 파고다 공원에 있던 이승만의 동상 목에 줄을 걸고 끌고 다니는 가운데

 

결국 12년간 잔인한 피의 철권독재를 휘두르던 독재자 이승만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민주혁명에 의해 쫓겨나 4.28에 경무대를 떠나 이화장으로 갔다가

 

1960년 5월 29일 부인과 같이 국민들 몰래 미국의 하와이로 도망가 결국은 조국으로 못 돌아오고 해외에서 죽었습니다.

다음은 이러한 시대 48년전 4.19 오늘 이승만정권의 총에 맞은 죽은 15살 한 여중생의 유서입니다.

 

지금 기준으로 봐서도 너무나도 그당시의 상황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진영숙양(15세, 당시 한성여중 2년)의 유서>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 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와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 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어머니,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윌들이 아니면 누구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잘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가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닌,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 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상 이만 그치겠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인 진영숙 양은 19일 오후 4시 학교를 파한 후 시위에 나가기에 앞서 홀몸인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일단 집에 갔다가 시장에 장사하러 나간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자 편지를 써놓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그녀는 성북 경찰서 앞으로 이동하던 버스 에서 구호를 외치다가 (마치 월드컵때 울나라 팀이 이겼을때 버스안에서도 대한민국 하며 했던것처럼...)

 

버스안에도 사격을 하던 경찰에 의해 총살 당했습니다.

 갠적으로 이 어린 소녀의 이 유서를 보면 100%는 아니더라도

 

그당시 목숨걸고 이승만의 퇴진을 요구하다 돌아가시거나 다치신 분들의 생각 이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낄수가 있겠더군요.

 근래 들어 어떤 반민주 비민주적인 신문사에선 이승만을 다시본다며 미화를 하고 있지만 이 4.19 시기에 진영숙 양과 같은 수많은 이름을 알수 없는 조국의 미래를 위해 힘쓰다가 돌아 가신분들이 계시길래 오늘날 우리들이 예전에는 못누리던 엄청난 자유를 느낄수 있는 현실에서 

 

 그분들의 희생과 피위에 세워진 대한민국에서 역사를 거꾸로 할려는 무리들을 보면서 얼마나 분노를 느끼실지 못난 후손들에게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지를 생각하면 이분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밖에 가질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히도 지금 정치권에서 어느당이라도 419혁명에 대해 현재 대한민국을 이룩한 것으로 좋게 평가하는 것에 대해 위안을 삼을뿐입니다..
ps

이승만이 쫓겨나는 계기가 되었던 3.15부정선거 와 대학 교수단 시국 선언문관련 글과 사진입니다.

3·15 부정 선거 지시 비밀 지령

가. 4할 사전 투표 : 투표 당일 자연 기권표와 선거인 명부에 허위 기재한 유령 유권자표, 금전으로 매수하여 기권하게 만든 기권표 등을 그 지역 유권자의 4할 정도씩 만들어, 투표 시작 전에 자유당 후보에게 기표하여 투표함에 미리 넣도록 할 것

나. 3인조 또는 5인조 공개 투표 : 자유당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미리 공작한 유권자로 하여금 3인조 또는 5인조의 팀을 편성시켜, 그 조장이 조원의 기표 상황을 확인한 후 다시 각 조원이 기표한 투표 용지를 자유당측 선거운동원에게 제시하고 투표함에 넣도록 할 것

다. 완장부대 활용 : 자유당측 유권자에게 '자유당'이란 완장을 착용시켜 투표소 부근 분위기를 자유당 일색으로 만들어 야당 성향의 유권자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주어 자유당에게 투표케 할 것

라. 야당 참관인 축출 : 민주당측 참관인을 매수하여 참관을 포기시키거나 여의치 않을 때는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 투표소 밖으로 축출할 것

(『동아일보』, 1960년 3월 4일)


대학 교수단 시국 선언문(1960. 4. 25)

이번 4·19 참사는 우리 학생 운동 사상 최대의 비극이요, 이 나라의 정치적 위길르 극복하기 위한 중대 사태이다. 이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규정(糾正)이 없이는 이 민족의 불행한 운명을 도저히 만회할 길이 없다. 우리 전국 대학교 교수들은 이 비상 시국에 대처하여 양심의 호소로서 다음과 같이 우리의 소신을 선언한다. …

'이 대통령은 즉시 물러가라', '부정 선거 다시 하라', '살인귀 처단하라'

(『동아일보』1960. 4. 26)

 

 

다음사진은 1960년 4월 12일자 부산일보 조간 1면에 나온

 


 



부정선거에 항의하다 행방불명되었다가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상태로
마산 앞바다 에서 시체로 떠올라 발견된 마산상고생 김주열의 시체로

4.19혁명의 불을 당긴 경상남도 마산 시민의거의 도화선이 된 사진입니다.


 위 글과 사진만 보더라도 이당시 이승만정권의 폭정이 어떠 했는지
왜 어린 여중생이 저런 일기를 쓰고 혁명에 가담했어야만 했는지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암튼 저때 피흘리며 돌아가신 수많은 분들..

 

그분들이 보시기에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은 그분들이 피를 흘리며 죽을 값어치가

 

있었던 모습이었는지.. 아닌지..

 

하는 생각이 좀 듭니다...

 

저나이대가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60살전후일텐데..살아계셨다면 최근에 선거에서 어떤선택을 하셨을지도..궁금하다는..

 

 

암튼 오늘 하루...

 

 

다른 더 볼만한 많은 뉴스들이 있지만..

 

그래도 48년전에 누군가 우리들과 동갑이거나 연상이거나 아님

 

훨씬 어린 애들이 오늘날 우리들이 누리는 자유를 얻기 위해 피흘러 죽었다는 사실을

 

(당시 이승만정권이 사람을 너무 많이 총살하는  상황에서 국민학생 애들도

부모님 형,누나를 그만죽이세요 라며 시위에 나섰었습니다. 그래서 역시 많이 총맞아 죽었죠...)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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